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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수십년간 진행되어온 한국 기독교 문화의 결실.. 무섭고 두렵다
 회원_132084
 2021-01-16 02:53:18  |   조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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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생각의 조각들>

대학교 2학년때.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역삼동에 있는 순복음교회 강남 제2성전에서 했었는데, 2천명은 족히 넘는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 만으로도 젊음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기억하고 있는 건 정반대의 것들이다.

모임이 끝난 후, 수 많은 청년들이 모여 나왔다. 그런데, ... 귀가를 하려던 청년들이 교회 밖 주변 인도와 도로를 점령하며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교통질서는 이미 저 뒤로 버린지 오래. 청색신호가 켜져있는 사거리에서 단체로 무단횡단을 하기도 하고 인도와 차도를 넘나 들며 걸어다니 시작했다.

서로 팔짱을 끼로 우르르 뛰어 다니던 무리. 길을 건너려던 이들에게 빵빵 거리던 차에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뛰었지만 이내 "모야, 왜 빵빵대고 난리야? ㅋㅋ … 야 근데 오늘 찬양 너무 은혜롭지 않았냐?”하며 도로를 가로 지르던 이들,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그렇게,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 없이 멀쩡한 사거리는 순식간에 도떼기 시장이 되어있었다. 그때 느꼈다. “아. … 먼 훗날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습일 수 있겠구나.”

교회에서는 너무나도 착하고 신앙 좋다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이유,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크리스챤으로서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보단, 얼마나 주일을 빼 먹지 않느냐, 십일조와 헌금을 성실히 내는가, 성경공부와 새벽기도회 같은 교회 행사에 잘 참여했는가로 신앙을 평가해왔던 우리네 교회 문화가 지금의 기독교를 만들어왔다.

박수를 치며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도록 했다 한다. 두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아멘 할렐루야는 "뚜루루 뚜뚜뚜"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보여져야만 했고, 그걸 보면서 만족해야 했던 부모는 박수를 치며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야만 밥을 주었고 그렇지 않으면 굶겼다 한다.

복수에 피가 차 올라 있을만큼 아이가 아팠고, 결국엔 췌장이 찢어지면서 생명이 끊겼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 마치 당장이라도 하나님이 오실 것과 같이 눈물을 흘리고 목청껏 찬양을 부르던 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오면 언제그랫냐는 듯 무단횡단을 하며 겉으로는 "죄송하다" 말하지만 속으로는 "왜 저래"라며 말할 수 있었던, 그래도 괜찮았던 지난 날의 모습 때문이다.

말을 듣지 않는다하여 죽도록 아이를 때렸고, 죽으라 고사를 지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린 아이를 방치했지만, 남들에겐 독실한 신자, 신앙인으로,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했던 이들의 사고와 행동 패턴, 과연 저들만의 문제일까.

며칠동안 잠을 설쳤다. 얼마전 듣게 된 소식. 몇몇 장면들은 지금도 머릿속을 맴돈다. 끝까지 볼 수도, 읽어 내려갈 수도 없이 잔인했던 얘기들에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사랑을 듬뿍 받아가며 자라기도 모자란 귀한 생명이, 오랜기간 분노의 대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끝내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는 소식은 정말이지, … 끔찍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오랜기간 지속되어온 사회문제다.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도 시계를 50년만 뒤로 돌려봐도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그러나 역대급이라 평가되는 이번 일을 단순히 사회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건,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갖고 있는 문제가 수치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성경은 문자로만 보면 모순이 가득한 책이다. 어떤 곳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뺨을 맞아가며 용서하라 가르친다. 복수와 용서가 동시에 나온다. 뭐가 우선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

때문에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수적이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 유대인들의 문화, 역사, 신앙과 헬레니즘,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온 성경해석은 선택적, 뽑기식 성경구절 사용을 용인해 왔다. 연말이 되면 성경구절 하나를 뽑아 다가올 한 해의 목표를 삼는다. 굿판에서나 벌어질 일들이 교회에서 버젓이 횡행된다.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발전, 성공, 부자와 같은 단어들과 등치되어 왔던 믿음과 신앙, 부흥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를 보면, 그간의 걸어온 길을 평가 할 수 있다. 과연, "그래도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가 전체는 아니다"는 식의 논리가 먹힐까. 이미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는 인식의 틀은 일부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다.

한참을 써 내려가다가 멈추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몇 주를 흘려보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사건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수십년간 진행되어온 우리네 기독교 문화의 결실, ...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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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6 02: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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