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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성직자로서 ‘부패한 검찰’을 꾸짖는다
 회원_897766
 2020-12-11 03:26:40  |   조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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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목사’입니다. 목사로 불릴 때 가장 행복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입으로 저를 가리키며 ‘성직자’라는 단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성직(聖職)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일지 찾아봤습니다. “1. (명사) 거룩한 직분 2. (명사, 기독교) 교회에서 규정된 규범에 따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직무나 직분” 그렇다면 성직자는 거룩한 직분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유일의 가치를 두는 것이 성직자라면 저도 성직자겠지요.

2. 여기에 제 나름대로 ‘성직자’의 기준을 적어봅니다. “세상적, 세속적인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사로잡혀 주님께 귀속되며 삶 전체를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자” 그렇습니다. 제 스스로의 이런 삶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살길 원합니다. 이 땅에서 단 한 평의 땅도, 집도 없지만 그것을 탐내거나 바램을 가져보지도 않고 살아왔습니다. ‘돈’이 없지만 그것을 가난이라고 비관하거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목사이니까요.

3. 턱없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삶이지만 영원을 바라보는 자로서의 제 삶의 목적은 ‘이 땅의 아픈 사람들(제가 아는 한, 모든 사람은 아픕니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를 전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굶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을 지니고 살 수 있도록 돕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평화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총체성을 구현하는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땅에 살지만 이 땅의 경쟁 속에 끼어든 적이 없습니다. 초월은 아니지만 초연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4. 그런 제가 오늘 대한민국 검찰을 꾸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기본권과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 땅에 법치주의를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라고 주어진 권한이 오용되고 남용되고 있습니다. 그 무소불위의 힘과 부패함이 ‘도덕적 해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5. 민주주의 하에서 모든 권력은 감시와 견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오늘날 당연한 이 명제가 저절로 당연해진 것이 아닙니다. 근대이후 수 백 년에 걸쳐 이루어낸 결과물입니다. 대한민국도 민주화 과정의 진통을 거쳐 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집단이 검찰조직입니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고, 더구나 기소편의주의까지 가진 막강한 권력입니다. 검사가 죄가 아니야 하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6. 그런데 그 막강한 권력을 검찰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정치적, 개인적 목적을 위해 없는 죄를 조작해서 만들어내는 검찰, 목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권위주의 정부에는 납짝 엎드려 권력의 입맛에 맞추는 검찰, 자기 자신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한 없이 관대한 검찰, 그리고 옷을 벗고 나면 전관예우(전관비리)를 통해 불법적으로 부를 획득하는 검찰... 이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검찰의 민낯입니다. 이번에 ‘검사룸살롱 접대’ 사건의 처리를 보며 실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전 국민이 검찰개혁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검사들이 룸살롱 대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세 명의 검사들에 대해 한 명은 불구속기소, 다른 두 명은 처벌할 수 없음의 처분을 하는 ‘신박한 법기술(?)’을 보고 그 대담함에 놀랐습니다. “아 이들이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구나”

7. 성직자로서 윤석렬검찰총장을 꾸짖습니다. 당신은 남의 허물은 현미경으로 보고 자기 허물은 망원경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시국에 비리 검사들을 이렇게 처분하다니 당신들 집단이 얼마나 외눈박이(혹시 이 단어가 차별적 단어이면 죄송합니다) 집단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장 엄중하고 무겁게 법을 수호해야할 당신은 치우쳐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그 어느 정당이든 정치적 집단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검찰총장은 그러면 안됩니다. 당신을 필두로 한 검찰이 얼마나 ‘천박한 이기주의’, 정글의 승자처럼 행동해왔는지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촉구합니다.

8. 오늘 공수처 법이 최종 통과되고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겠지요. 저는 공수처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무소불위의 검찰은 최악이기에 공수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수처가 괴물이 될 것이라고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검찰보다 악한 괴물은 없습니다. 모든 권력에는 감시와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공수처는 검찰에 쏠려있는 힘에 견제와 균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른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넣어둔 메기처럼,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공수처가 정권의 시녀 노릇할 것이다? 정권은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정권을 믿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또 우리 국민의 성숙한 힘으로 바꿔나가면 됩니다.

9. 검찰에게는(판사를 포함해서) ‘인간의 생명과 인신의 자유’를 구속할 권한이 주어져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질수록 꼭 필요한 자세가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내리는 법률적 판단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한 사람의 삶과 인격권이 달려있습니다. 그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권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 책임을 져야하는 두려운 자리입니다. 검찰과 사법부와 공수처 모두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에 공정을 담보하고, 진리와 평화의 수호자가 되고, 인권의 보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향유하는데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검찰이든 판사든 한 인간일 뿐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판단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10. 한 성직자의 바램이자 충고요 꾸짖음입니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물론 검사분들 중에 훌륭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또 믿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글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주님을 그리워하며, 그 분의 평화를 구하며...

(사진은 군위의 한 "천년" 마을의 돌담길입니다. 역사 앞에 선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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