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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복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
 회원_318183
 2020-11-05 05:21:35  |   조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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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 한 10년 정도 된거 같다. 그때부터 개교회의 이야기와 관련된 책들은 필요한 일이 아니면 찾아서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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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뭐가 그리 불편했던 것일까. 여러 규모의 교회들 그리고 나름 여러 목회자들을 경험했던 이유도 있고, 가감없이 진솔하게 기록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직분자들 위주의 이야기여서도 그렇고, 한국교회(딱히 실체를 찾기 어렵지만) 전체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 그러한 이야기들이 소망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90%이상의 여러 교회들의 정황에는 그리 맞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문제가 많이 있고 허물이 많지만 그래도 여기 괜찮은 교회가 있다는 말들도 불편하다. 이미 파편화 되어 있고, 성경을 바라보는 시선 조차 달라져 있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교회의 괜찮음의 기준은 어디 있는 것인가? 어떤 분들에게는 설교, 어떤 분들에게는 교회의 프로그램, 어떤 분들에게는 다른 무엇이 그 기준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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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상 교단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무의미 해진 지금의 정황 속에서, 모두가 일종의 생존을 위해 바둥거리고 있다. 어쩌면 저기 멀리 있는 이야기 보다, 부서지고 망가지고 사그라들더라도...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 안에 은혜로 부름 받은 우리들의 삶이...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가 있고, 어디를 향해,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생각하게 될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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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때, 꽤 많은 선후배들이 일종의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 교회의 청년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교회에는 많은 신학생들이 부러워하고 사모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교회에서 복음을 듣지 않으면 제대로 들은게 아니라는 듯한 이야기들, 그 교회만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라는 무의식적인 표정과 말투들. 한 때 일종의 광풍처럼 우리를 감쌌던 그 바람과 모습들. 분명 그 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인생들의 어리석음과 왜곡을 포장하는 일들도 지금 돌아보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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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의미가 없지 않다는 작은 교회들 혹은 미자립 교회들의 모습. 모두가 뭔가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현장은 무의미해 보이는 주저앉음이 가득하다. 한편, 이런 와중에도 뭔가가 있어 보인다는 현장들...그곳에도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 하지 않는 감춰진 것들도 많다. 다 교회다. 어쩌면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뒤틀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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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회는 특별하다기 보다는 특이한 공동체다. 모든 요소를 갖춘듯 보여도, 정작 주님이 계시지 않고 복음이 그저 자기들이 듣기 좋은 소식으로 머물 수도 있고. 참 초라해 보여도 좋은 소식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거기 어딘가에는 늘 작은 겨자씨가 있어서, 자라나 새들이 쉬고 누군가가 힘과 위로를 얻는 자리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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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이 많아서...의심이 많아진걸까. 가감없이 진솔하게 쓰였다는 교회 이야기들을 잘 믿을 수가 없다. 거기에는 언제나 사람의 얄팍함이 있으니. 지금의 우리네 정황을 잘 살피면, 어딘가에서 어느 교회는 괜찮다더라는 이야기는 그리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그 배경조차 5-10% 정도의 사람들과 교회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때가 많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복음, 좋은 소식이고...그 좋은 소식으로 인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다. 단순 노동은 곧 사라질 것처럼 이야기 하면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러면 어쩌라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딱히 스피커를 켜지 않고, 딱히 마이크를 잡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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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토대와 기초가 없고...누구도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지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의 삶의 정황속에서...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대다수의 지체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저런 별거 아닌 일로 왜 죽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곤고한 날이 찾아오면 그때 그 맘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 우리다.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강력하게 읽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종교들이 무언가를 하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이야기 하는 속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인생들과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이야기,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소식이다.

_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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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5 05: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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