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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Exodus from Protestantism] Ep. 0
 회원_361568
 2020-10-31 03:54:25  |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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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제겐 꿈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둔 꿈이고, 수년간 조금씩 수정되고 발전되어 온 꿈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공동체, 대안적 신앙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일입니다.

본래 ‘교회’ 자체가 이미 세상에 저항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안 공동체임에도, 저는 새로운 대안적 공동체를 꿈꿉니다. 이미 교회, 특히 이 땅의 개신교회들은 대안적 소망 공동체로서의 생명력을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성서를 잘 모르고 한없이 부족하지만, 제가 성서를 읽고 공부하며 알게 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으며 당신을 찾는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시는 분이란 사실입니다. (역대하 15:11,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이나 대지주 등 기득권을 위해 활동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관심은 ‘땅의 사람들’에게, 이름없는 자들의 고통어린 삶들을 향하고 있었죠. (마가복음 16:7,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역사 속에 존재해 온 그리스도의 참된 공동체는 언제나 소수였지만 사회적 불의, 그리고 약자 및 소수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웠습니다. 사랑과 긍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고, 십자가의 정신을 근본으로 삼아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웃을 구원하는 일상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구현했습니다. 죽음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저항은 그 자체로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그게 ‘복음’을 구심점 삼아 서로 다른 이들이 한 몸으로 이루어져 가는 예수님의 공동체였죠.

제 생각에, 오늘 이 땅의 개신교회들은 이미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세상보다 더 지독한 차별과 증오의 온상이 되어버렸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착각하며 조작된 신적 권위와 기득권의 위치에 기대어 사회적 폭력을 맘껏 휘두르는 광신집단으로 점차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상황이 이러한 종교적 광기를 부추기고 있고, 전광훈 사태는 이 광기를 마침내 대 사회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세워진 여러 가지 차별의 장벽들 그리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를 미워하고 정죄하는 혐오의 정서에 반대하며 그런 죄악들에 맞서 싸워야 할 그리스도교가, 이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마음껏 차별하고 혐오할 권한을 달라고 주장하는, 집단이기주의의 온상이 된 것이죠.

물론 여전히 좋은 교회 공동체들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존경받아 마땅한 개신교인들도 부지기수고요. 하지만 하나의 거대 종교 집단으로서의 한국 개신교는, 이제는 자정작용의 가능성이 상실되어 버린 ‘헌 부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시대와 환경을 막론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항상 우리에게 ‘새로운 술’인데, 그 ‘새 술’을 담기에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는 너무나 ‘헌 부대’가 되어버렸죠. 오래 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유대 교권주의자들, 율법을 근거로 이방인과 여성과 장애인과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배제했던 종교 카르텔의 그림자가 이젠 이 땅의 개신교에 넓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거에요.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성서를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으로서, 저는 성서가 날마다 저를 향해 걸어오는 도전의 음성을 갈수록 거부하기 힘들어집니다. 이제 이 땅에는 ‘새 부대’가 필요하며, 새로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말입니다. 탈 이집트(Exodus)하고 광야로 나가서야 비로소 만나를 맛볼 수 있었던 이스라엘처럼, 저는 ‘탈 개신교’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구원의 길이라 믿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저는 교회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복음적 가치 구현이요 대안이라 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혁(Reformed)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Exodus)이라고요.

그냥, 내년부터 한 발짝씩 시작할 행보에 관해 나눔도 할 겸, 저 스스로 점검도 할 겸 이따금씩 시리즈로 찬찬히 글을 써보려 합니다. 어떤 분들이 보기에는 아직 무지하고 어설픈 젊은이의 치기로 비춰질 수도, 현실감각 떨어지는 이상주의자의 공상으로 비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수년간 현장 목회자로 살아오며, 다가오는 미래의 촉박함과 새로움 앞에서 그칠 줄 모르는 교권주의자들의 헛발질과 너무나 경직되고 정체되어 있는 기성 교회들의 상태로는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제가 잘 났거나 그럴 자격 혹은 능력이 있어서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신교의 몰락과 새로운 대안적 신앙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요청이라 느끼기에, 불확실과 미지의 공포를 딛고 불안한 한 걸음을 떼어보려 합니다. 이미 그 길을 걷고 계신 분들과 함께요.

그럼 새로운 하루도 평안하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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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03: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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