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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 착취와 압제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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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 착취와 압제 그 자체
  • 딴지 USA
  • 승인 2020.08.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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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찍과 쇠사슬이 보이는가? --

역사는 언제나 착취와 압제였다.

시기마다 그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물론 지금은 노예도 없고 쇠사슬도 채찍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2명 이상씩의 노동자가 이 나라의 산업 현장에서 죽고 있다.

물류창고같은 데서 불이라도 나면 10~20명이 한번에 떼죽음을 당한다.

열흘을 굶다 삶은 달걀을 훔쳐먹고 체포된 극빈자들은 18개월을 감방에 있어야 한다고 구형을 받는다.

국민소득 3만달러이지만, 상위 10%가 그 국부의 거의 반을 가지고 있는 사회. 이 정도의 불평등은, 그 자체가 이미 착취와 압제라고 표현할 밖에 없다.

생산이란 인간의 노력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허면, 쇠사슬과 채찍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인간들의 노동으로 생산된 부는 극소수에게만 분배되었단 뜻이다.

옛적에는 독재 정권이 권력을 밀실에서 향유했다.

당시의 갈등 구조는 폭압 독재 대 반독재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진짜 권력은 경제 권력이다.

한국은 "돈의 독재". 즉 재벌 독재 사회가 된 지 오래이다.

언론은 재벌들이 무슨 법을 어겨도 글 한줄 쓰지 못한다. 언론사가 재벌들의 광고비로 경영 유지되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은 재벌들에게 가혹한 판결을 하지 못한다. 검찰, 판사라 해 봐야 공무원이고, 퇴임하면 재벌들 회사로 들어가 변호사 노릇을 해 주는 게 그들의 꿈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재벌들과 상대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미 일자리 창출과 금융과 모든 경제의 프로세스가 재벌기업들 위주로 돌아가게 된 지 무척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도 퇴임후에는 갈 자리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이다.

재벌들은 동네 편의점까지 할 것 없이 산업 구조 자체를 다 싹쓸이했다.

구멍가게 빵집까지 다 멸종시키고는, 막상 자기들 공장은 외국에다 지어놓았으니 국내 일자리는 늘릴 방법도 없다.

이미 한국 재벌 자본은 국제화가 돼 있다. 그런 그들에게, 국가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거추장스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을 시켜 툭하면 "우리 회사 탄압하면 국가 경제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은 맨날 우리가 먹여 살렸는데 이렇게 하면 안 돼지" 이렇게 떠들어댄다.

작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한국 수출 금지 조치를 생각해 본다.

불화수소같은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런데도 난리였다.

한국에서 그걸 생산하는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애초에 한국의 재벌 기업은 소재, 재료 산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기술 집약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산업이 발달하면 기술자들의 파워가 세진다.

한국 재벌기업은 기술자들, 엔지니어들이 크는 걸 싫어했다.

오로지 모두가 자신들의 돈과 규모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원했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 지금 한국 경제의 시스템이다.

그 어떤 것도 대기업이 없이는 수출도 생산도 뭣도 안 된다.

중견기업, 좀 되는 중소기업이라 하면 예외 없이 대기업에 물품 납품하는 하청업일 뿐이다.

바로 그 하청업 공장들에서 사람들이 하루에 세 명씩 죽어나가는 것이다.

쇠사슬과 채찍은 사라졌다.

그러나 속박과 착취는 여전하다.

현재 사회의 착취는 더더욱 야비하고 교활해졌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든다.

사람이 비참해지는 것은 그러나 가난때문이라기보단 가난함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때문이다. 이런 수치에 대한 공포가, 비인도적인 산업 환경에 사람을 밀어넣는 걸 용인하고 눈감게 한다.

이 수치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사람의 목숨이 끊어져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마치 가스실로 유태인들을 태연히 밀어넣던 독일군들과 유사하다.

자본주의의 탄생은 '신분사회'가 '계약사회'로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 부분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신분 사회는 개개인의 열렬한 노력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계급제도의 유지가 생산보다 중요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에 따른 계약을 원칙으로 하니, 그 전 단계 경제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생산력을 달성하기 시작한다.

그런 맥락이 없이 한국 사회에 일제가 갑자기 들여다 놓은 식민지 자본주의는 태생, 뿌리가 이미 잘못된 것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에 열렬히 협조하는 자들에게만 기회가 다 몰렸다. 해방 후에는 군부독재 정권에 시녀 노릇을 하는 자들에게 모든 돈 벌 기회가 주어졌다.

자본주의는 능력의 평가와, 공정한 계약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 싹이 틀 때부터, 오로지 유착과 카르텔에 의해 발전한 것이다.

아직도 맨날 보면 특수관계자 자회사 만들어서 재벌 내부거래나 하고 앉았고, 정치인들과 유착해서 공사권 따내고 부실공사하고 정부돈 횡령. 검찰이랑 유착해서 불법으로 돈 벌고 검찰과 나눠먹기.

분식회계하고 주가 뻥튀기하고 먹튀.

이런 말도 안되는 자본주의가 지금껏 '안정되게' 발전해 왔던 이유는 뭘까.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경제 권력에 대해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가조작같은 경제 반칙들은 지금도 만연하다.

삼성도 분식회계하다 재판받고 있으니....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리고 불법이 뻔한데, 왜 만연해 있겠나?

그렇게 해야 돈 번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해서 돈을 벌 수 없다고 다들 믿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라며 양심적으로 하다가, 돈을 날리고 사업이 고꾸라진 사람들은

지독한 사회적인 멸시를 받는다.

그게 한국의 자본주의다.

스웨덴이나 독일같은 나라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맹점들을 보완해서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서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 모순 많다는 자본주의 자체를 아예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

오로지 자본주의의 탈을 쓴 유착 카르텔 경제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게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유착 카르텔 경제.....

무슨 진보-보수 구도 이런 게 아니다.

기업-관료-언론 즉 비선출 권력이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돼 있는 것이다.

선출 권력은 그들과 같이 손잡고 하나가 돼서 가느냐, 아니면

그들과 대립하여 경제적 혼란을 맞고 언론으로부터 피떡이 되도록 터지느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선출 권력은 내가 볼 때

역부족이다.

비선출권력 카르텔의 힘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검찰개혁안을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다른 여지가 없다.

그러니, 경제 민주화의 마지막 보루 역시 결국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모든 힘을 다해 유착 권력의 카르텔에 맞서야 한다.

채찍과 쇠사슬은 보이지 않는다.

허나 착취는 어느틈에 일상화가 돼 있다.

시민들은 선출 권력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 외치고, 밀고 끌어서 경제 민주화를 일궈내야만 한다.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출처: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556274827724781&id=100000268962853

By Joohyuc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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