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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불체포특권에 관한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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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칼럼] 불체포특권에 관한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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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2.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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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과 민주당 ‘소신파’에게 물어보고 싶은 몇 가지

대한민국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도 부여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다수의 국회의원이 동의할 경우, 그리고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원은 국회가 열려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국회에 나와 무슨 말이든 소신껏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이 여러 차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반민주적 헌법 개정을 해치웠지만 제헌헌법이 규정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조항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부당한 특권인가?

현역 국회의원을 국회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1)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2)법원은 영장을 심사하기에 앞서 정부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낸다. (3)정부는 법원의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에 보낸다. (4)국회는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한다. 의결 요건은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이며 방법은 무기명 비밀투표다. (5)법원은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면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국회가 가결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심사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거나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단계(4)에 와 있다.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하고, 영장전담 판사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구치소에 들어가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인사들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소리 지른다. 정의당도 여기에 가세했다. 예의 ‘민주당 소신파’가 빠질 리 있겠는가. 익숙한 이름들이 이재명 대표를 비난하거나 훈계하면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말한다. 신문과 방송을 불문하고 기자들은 대부분 사실상 정부 여당을 편드는 ‘검찰발 소설’을 기사 형식으로 쏟아내면서 이재명을 비난하는 민주당 정치인의 입에 확성기를 댄다. 모두가 익히 보던 풍경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헌법의 취지와 달리 불체포특권을 개인비리 방탄용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체포특권이 존재 가치가 없을 만큼 불합리하고 부당한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17세기 초 영국 의회가 처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왕위를 물려받은 제임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마구잡이 잡아 가두었을 때 의회가 왕의 사법권 남용을 막으려고 정부가 마음대로 의원을 체포할 수 없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미합중국 헌법을 거쳐 민주주의 국가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불체포특권은 집행권을 가진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대의기관인 입법부를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다. 만약 대통령과 합법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법무부‧행안부 장관 등이 권력을 남용할 위험이 전혀 없다면 이런 제도는 없어도 된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는 권력을 독점하고 오남용하는 성향이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증명했다. 이 성향은 이념의 좌우와 지식의 다과(多寡)를 가리지 않으며 남녀와 노소도 구분하지 않는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앞으로 우리 국민이 선출할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임명할 법무부장관 역시 같은 반열의 인간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없애자고 주장해도 된다. 그런데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정치인과 언론인 중에 그런 믿음을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는 여태 목격하지 못했다. 왜 말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말하면 대통령이 좋아할 텐데.

이재명의 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과 정의당과 몇몇 민주당 정치인은 이재명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과 여당 국회의원들이 그러는 이유는 누구나 안다. 그들은 정치인 이재명을 제거하고 싶다.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검사들은 영장전담 판사들을 다 안다. 대학교 선후배, 고시학원 동료, 연수원 동기 등의 인연으로 서로서로 얽혀 있다. 구속영장을 내줄 가능성이 제일 높은 판사가 이재명 구속영장 심사를 맡을 수 있도록 영장 청구 일정을 맞추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구속영장만 나오면 만사형통이다. 사실이든 조작한 것이든 수사정보 형태로 흘려보내면 언론이 알아서 보도한다. 여론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재판 결과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이재명을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사실과 논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의당과 민주당 ‘소신파’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무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 수사권의 합당한 행사인가, 아니면 정치인 이재명을 제거하기 위한 검찰 수사권의 오남용인가? 만약 수사권의 합당한 행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판단과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시라. 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사권의 오남용이라고 본다. 그래서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는 것은 헌법 제44조의 취지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이 두 판단 사이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재명 대표더러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만 보면 ‘정신 나간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단테의 말을 굳이 적용하진 않겠다.

둘째, 이재명의 죄는 무엇인가? 언론에 나온 내용만 보면 성남시장으로서 성남시와 성남시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공무를 수행한 것이 죄다. 그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게 아니다. 행정에는 오판이 따르게 마련이고 판단이 옳았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재명이 성남시장의 권한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장동 개발과 성남FC 운영은 공적 업무였다. 시장으로서 시정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대법원이 사실로 인정한 것까지 부정한 검찰의 주장이 다 사실이라 가정해도, 100의 성과를 낼 수 있는데도 50밖에 내지 못했으니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상식에 반한다. 그게 형법상의 범죄를 구성한다면 지방정부 책임자 누구든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다 감옥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군말 없이 판사한테 가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이 점과 관련해서는 특히 정의당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정의당은 법정에서 부당한 실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당원과 국회의원과 당직자가 많은 정당이 아닌가. 그대들은 이젠 검사와 판사들이 올바르게 법을 집행하고 적용한다고 믿는가? 도대체 판사를 얼마나 굳게 신뢰하기에, 이재명 대표더러 검찰수사권을 동원해서 정부 여당이 가한 정치적 공격에 대해 헌법이 부여한 제도적 방어수단으로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판사 한 사람한테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기라고 요구하는가?

대통령은 왜?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부결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의당 의원 6명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등이 찬성하고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가결될 수 있다. 이론상 불가능하진 않아도 확률은 극히 낮다. 국회 폐회 기간에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해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영장 청구 절차 진행 중에 국회가 다시 열릴 수 있다. 만에 하나 일단 구속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민주당이 헌법 44조에 따라 석방요구안을 제출해 가결하면 다시 풀어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이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시켰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실 인사가 영장 청구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공언하거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을 수 없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그러는 걸까?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우리가 추리할 수밖에 없다. 동기를 추정하는 가설이 둘 있는데, 어느 게 맞는지 나는 판단하지 못하겠다. 하나는 ‘감정’, 다른 하나는 ‘전략’이다. 둘 모두 증명할 수는 없으니 ‘이론’이 아니라 ‘가설’이라 하자.

‘감정설’은 단순하다. 대통령이 이재명을 싫어해서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지시했고, 검사들은 결과적으로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인정은 받아야 하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뭐, 그런 가설이다. 이 가설의 최대 약점은 상식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대통령이 설마?’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전략설’은 조금 복잡하다. 『대망』류의 일본 대하소설이나 『삼국지』같은 중국 고대소설을 즐겨 읽은 사람들은 이 가설에 끌린다. 대통령이 이재명을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당대표나 차기 대선후보 자리를 노리는 민주당의 야심가들이 희망을 품고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대량의 찬성표가 나와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극심한 내부 분열의 늪에 빨려 들어간다. 잘만 하면 분당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다고 해도 적지 않는 민주당 반란표를 확인하면 이재명의 당내 권력 기반을 흔드는 효과가 난다. 사실의 근거가 있든 없든, 온갖 사건을 들추어 언론에 정보를 흘리고 구속영장 청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재명을 계속 흠집 내면서 내년까지 상황을 끌고 가면 국민이 넌덜머리가 나서라도 이재명이 대표로 있는 민주당을 찍지 않을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전략설’의 최대약점은 경험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설마! 우리 대통령이 그런 작전을 할 정도로 똑똑하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주의 깊게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반문할 것이다.

불가지론

나는 그 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이해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이젠 포기해야 하나 싶다. 소위 ‘도어 스테핑’을 그만두었고,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내놓는 별 뜻 없는 의례적 발언과 한 문장을 맺지 못하고 다음 문장으로 끝없이 넘어가는 즉흥 연설을 보아서는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달에 백억 달러 넘는 무역 적자가 나도 원인이 무엇이며 대책은 있는지 말이 없고,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간 시점에서 가스 값을 대폭 올리면서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공개 일정을 보면 박수가 많이 나오는 행사 일정을 만드는 꾀 많은 공무원과 행사를 다니면서 자신이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무능 장관이 떠오른다. 대통령은 지금 국가 운영과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검찰 수사권을 동원해 야당을 골탕 먹이는 싸움질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한시적으로 임마누엘 칸트 선생의 불가지론(不可知論)에 귀의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윤석열은 연역적 사고와 경험적 추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대통령이다. 인간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은 나의 주관적 인식체계의 외부에 독립해 존재한다. 내가 인식하는 대통령은 ‘윤석열 그 자체(Yoon an sich)’가 아니라 나의 감성형식과 사유방식으로 인지한 ‘현상(Erscheinung)’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과 ‘윤석열 그 자체’는 같지 않다. 우리는 객관적 실재인 ‘윤석열 그 자체’를 모른다. 그래서 그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감성형식으로 포착한 ‘현상’에 불과하며 ‘사물 자체’로서의 시간 공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재명을 제거하려고 하는지 정색하고 분석 비평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 되는 말을 하나도 하지 않으니 아무 대책이 없다. 두 가설 중에서 나는 ‘감정설’에 한 표를 주고 싶은데 확신할 근거가 없다. 칸트 스타일의 ‘불가지론’이 비상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진지하게 임하기엔 현실이 너무 어이없을 때는 웃어버리는 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헛소리인 듯 헛소리 아닌 헛소리 같은 칼럼을 썼다. 외람되오나, 독자들께서 너무 크게 나무라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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