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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절대군주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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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절대군주는 있을 수 없다
  • 딴지 USA
  • 승인 2022.06.2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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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뿌리깊은 사고 속에 그것이 고착화되어서 고질병처럼 뽑히질 않는다. 민주시민임을 자인하는 사람들조차 머릿속에는 대통령 = 왕이라는 사고가 들어앉아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진정한 개혁은, 많은 사람들의 협의와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하나씩 시스템적으로 이뤄져 나가야 하는 것인데 시민들은 한 명의 "선의를 가진 절대군주"에 의해 대원군이 개혁정치 하듯 그렇게 막 밀어부쳐져야 하는 걸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인 한 사람에 자꾸 의존하려 하고, 정책이 아닌 '사람'에 대해 팬덤이 되고 만다. 그러다가 그가 낙마하면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정치는 계속 후퇴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렇게 겪고도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이 권력을 '휘둘러서'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고 사회가 진보할 것이라 믿는단 말인가? 우리나라 국민들은 매해 속고 있다. "선정을 베푸는 절대군주=대통령"이라는 허상에 매번 속으면서 또다시 거기에만 의존한다. 대통령 한 명에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정치 체제가 계속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승만과 박정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한국 전쟁 중에 국회의 신임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재집권이 불가능해 보이자, (당시 대통령은 간선제로, 국회의원들이 뽑았음) 정치깡패들을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가둬놓고 강압적으로 직선제 개헌안 표결을 하게 된다. 이 개헌안을 발췌개헌이라고 하는데, 이승만측이 추진한 대통령 직선제와 야당이 주장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대충 절충한 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왜 직선제로 하면 이승만이 유리했겠는가? 당시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명망 있는 독립 투쟁 인사들은 전부 제거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는 오로지 이승만에게만 있었다. 이승만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실정을 저질렀는지, 인민군 남침시 이승만 혼자 왜 서울을 버리고 튀었는지 거창 양민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이런 것들은 (당시 문맹률이 높은 관계로) 대중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투표장에 가면 잘 모르고 1번에 기표하고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과연 이런 상황이 크게 다를까? 윤석열이 갑자기 차기 대선 주자로 여론 조사상에 튀어나온 경황을 한번 짚어보자. 문맹률이 거의 없는 지금 상황에도 사람들은 그저 신문 방송에 많이 나와, 지명도 높은 사람을 뽑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홍준표가 방송에 많이 나오면 홍준표한테 여론조사가 높게 나오고, 윤석열이 방송에 많이 나오면 윤석열한테 여론조사가 높게 나오게 돼 있다. 이게 오직 한 명인 국가 수반을 뽑는 대통령 선거 직선제가 위험한 점이다.

어떻게 윤석열을 뽑을 수 있느냐고 절규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게 우리나라 대통령 중심제 선거가 구조적으로 갖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이미 이승만때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다 박근혜같은 바보가 대통령이 됐겠는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아직도 진하게 갖고 있었고, 오로지 그 심리때문에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전쟁 전후 세대들은 여전히 박정희가 "선의를 가진 절대군주"라고 회상한다. "누구 때문에 우리가이렇게 먹고 살게 됐는데"라는 생각에서 절대적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대통령=왕이라는 생각의 구조는, 심지어 진보쪽을 지지한다는 시민들까지 공통으로 갖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국가 주도 개발 성장 플랜은 이미 4.19 이후 장면 내각이 입안해 갖고 추진하는 정책이었다. 이승만이 하도 민주주의를 어지럽히니까 국회의원들은 당연히 내각제를 입안했는데 박정희는 쿠데타로 그걸 다 무너뜨린 후 경제정책을 그대로 진행한 것뿐이다.

한국이 수출주도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신흥 무역 강자로 올라선 것은 "선의를 가진 절대 군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내각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정희가 우리나라를 먹고 살게 만들어줬다고 추앙하고 떠받들고, 그 딸까지 왕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나라는 갈등이 많고 복잡하다. 게다가 분단까지 돼 있다. 이걸 아무리 머리 좋고 뜻이 선량한 사람이 있다 해도 한 명의 머리로 처리해 나갈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어떤 정책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양쪽의 사람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신재생에너지를 추진, 지원하겠다고하면 석탄 수입업자나 원자력 발전 관련 업계의 주가가 떨어진다. 오랫동안 집없이 지낸 가장들을 위해 청약 가점에 따라 분양 순위를 준다고 하면, 20대 젊은층은 청약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어져 정권에 엄청난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런 갈등들을 대체 어떻게 한 명의 사람이 왕이 돼서 끌고 나간단 말인가? 나라는 늘 2개의 진영으로 분할돼 죽을 때까지 치고받게 돼 있다.

방법은 재생에너지 관련한 사람, 전통적 에너지 관련돼 있는 사람을 같이 에너지 위원회에 넣고 거기서 결정하고 예산 심의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택 정책이라면 20대, 40대, 여성 다 집어넣고 거기서 결정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범위가 확장되고 확장되면 결국 의원 내각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모든 나라들이 (미국, 프랑스만 빼고) 다 내각제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절대로 일본처럼 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정치에 엄청나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이고, 한국은 벌써 몇 번이나 정권을 뒤집었나? 이미 4.19 이후에 벌써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박정희때문에 국민들이 여지껏 그 환상에서 못 깨어나고 있을 뿐이다. 선량한 절대군주만을 바라보는 팬덤 심리는 그러나 단지 환상이고 꿈일 뿐이다. 그런 군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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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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