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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분리는 철저하게 검찰이 스스로 자초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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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권 분리는 철저하게 검찰이 스스로 자초한 것
  • 딴지 USA
  • 승인 2022.04.2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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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존경하는 김필성 변호사님께서 아래와 같은 요지의 글을 올리셨다. (너무 투박한 요약이라 매우 송구하다.)

'검사는 임용되기까지 수사를 배우지 않는다. 임용된 후 실무에서 오직 경험으로 배우는 것 뿐. 그런 경험이야 경찰도 수사권을 넘겨받고 나면 저절로 쌓인다'.

기본적으로 이런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 그런데 사실은, 한가지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내 소견에는, 검찰의 수사력이 경찰보다 우월할 수 있는 부분이 실제로 존재한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영장 청구권과 기소권 때문이다.

검찰은 영장청구권을 독점한 탓에 내키는대로 영장을 청구해가며 수월하게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경찰이 '이런 상황에서 영장이 필요하다고 검찰에 청구하면 과연 승인해줄까' 하고 고민하는 동안, 검사는 그냥 영장을 청구해버린다.

게다가 검찰은 기소권도 독점하고 있는 덕에, 필요하면 증인 격인 참고인들을 소환해 증언을 회유하다 '수 틀리면 당신도 감옥 갈 수 있어' 식으로 기소 여지를 비춰가며 강압적으로 수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기소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은 경찰과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

또 검찰은 한국의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플리 바게닝(유죄 협상)이나 그와 유사한 시도들도 변칙적으로 수사기법으로서 활용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뒤집어 말하자면, 경찰도 검사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영장 청구를 할 수 있고 멋대로 직접 기소도 할 수 있었다면, 경찰이 검사보다 수사력이 부족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김필성 변호사님이 지적하셨다시피, 검사는 임용 이후에야 '어께 넘어' 배운 것이 고작이기 때문에. 같은 권한들을 경찰도 가지고 있었다면, 전문 수사인력이 넘쳐나는 경찰이 검찰을 완전히 압도했을 것이다.

요컨대, 검찰의 수사력이 실제로 경찰보다 우월하다면, 그건 검사들이 대단히 명석한 인재들이라거나 경찰은 모르는 대단한 전문 수사기법들을 배워서 실제로 우월한 수사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영장청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사들이 수사권까지 한 손에 다 움켜쥐고 그 권한들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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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검찰에게 수사권까지 부여하지 말아야할 결정적인 이유다. 헌법은 검사에게만 영장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건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국민의 신체 및 주거의 자유 침해 등)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처럼) 검찰이 직접 수사까지 하는 경우,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견제하려는 헌법의 취지는 무력화되게 된다. 즉 실질적인 진실은, 검찰이 수사권 분리를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오히려 정반대로, 검찰이 수사권까지 마구 휘두르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위헌적인 것이다.

단일 기관이 형사사건 처리에서 더 많은 권한을 독점하면 형사사건 절차가 더 효율적이고 수월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세 이전처럼 왕이나 원님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는, '뒤져', '잡아들여', '증인 잡아와', '주리를 틀어', '너 유죄야', '목 잘라' 권한을 다 독점하고 있으면 (그 왕에게 능력과 성의가 모두 넘쳐난다는 전제 하에)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정의를 구현하기가 매우 수월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이 끌려와 고초를 당하고 헛다리를 짚은 결론들로 온갖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 그뿐인가. 왕이나 원님의 개인적 이해관계나 친분이 개입하거나 그가 불합리한 심증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강력한 권한들은 오히려 허위 진술과 무고 등을 거쳐 엉터리 결론에 이르기도 매우 쉽다. 왕의 의지나 판단력이 모자랄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근대 이후 사법 제도는 수사와 재판에 이르는 모든 절차와 그에 필요한 권한들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나눠놓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경찰은 기소할 수 없고, 검사는 영장을 청구하되 직접 발부할 수는 없고, 판사는 판결하되 수사 과정에 관여할 수 없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형사 제도보다 더 발전한 미국의 경우 기소도 검사가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배심으로 권한을 나누고, 판결에서도 유무죄 여부는 배심원단이 결정하고 판사는 형량만 결정하는 식으로 권한을 더 나눠놓았다. 배심원들이 판사보다 더 공정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나는 미국의 사법제도가 기소와 판결이라는 막중한 권한을 우리나라보다 더 세분화시켜 분산시켜놓았다는 측면에 대해 더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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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절차의 그 모든 권한들을 한 기관에 다 몰아주면, 단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아니, 당장 정부와 국회도 합쳐놓으면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진행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정책을 실행할 정부가 직접 입법하고 즉각 시행하면 얼마나 효율적이겠는가! 정부가 얼마나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겠냐는 말이다. 정쟁이나 하는 국회 따위 없애버리고.

하지만 민주국가에선 국가 권력은 필연적으로 분산되어야 하고, 더 강력한 권한일수록 더 분산되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배워온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특히 수사와 재판에 투입되는 공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권한이기 때문에, 민주적 사법시스템에서는 반드시 최대한 통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영장청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수사권까지 가지고 직접 수사를 남발해왔다. 영장 발부와 판결권만 판사의 몫일 뿐 나머지 권한은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하게 집중된 권한 탓에 남용도 쉽게 벌어진다.

헌법이 '실체적 진실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취지로 수사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우선했다면, 검사에게만 영장 청구권과 기소권을 부여했을 리가 없다. 수사란 본질적으로 죄의 유무와 무관하게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그런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형사사건 처리에 필요한 각종 권한들을 여러 기관들에 나눠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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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개월간 검찰은 수사권 폐지 추진에 대항해 세계 각국도 검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대대적으로 벌여왔다. 그런 주장 자체는 다분히 맞다. 하지만 그중 선진국들 대부분에서는, 검찰은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도 남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얼마전 공유한 미국의 한 지방검사가 직접 설명한대로, 수사권이 있어도 여러가지 이유로 검사가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것을 극히 자제하고 있다.

한국 검찰은 그간 어땠는가. 무분별한 직접 수사를 남발하며 인권을 침해해왔고, 그런 과정에서 엉터리 결론으로 기소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검찰은 그간 '검찰이 경찰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라는 주장을 수없이 내놓고 있는데, 그 주장이 참으로 역설적인 것이, 모두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서만이다.

검찰이 직접 수사한 사건들에서 스스로 오류가 바로잡은 사례는 얼마나 되는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스스로의 오류를 덮기만 총력을 다했던 사례들만 그득그득 하다. 검찰이 독단적으로 수사했다가 잘못된 결론으로 기소했다가 뒤늦게 수사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고, 영영 실체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강력한 권한들을 집중하고 있는 검사가 밝히기 싫어하면 밝혀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건 해외 선진국의 검찰 직접 수사 사례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외 선진국들의 검찰은 직접 수사가 가능해도 매우 드물게 혹은 조심스럽게 행사하고 대부분 남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어땠나. 한마디로 '자제가 안된다'. 떠들썩하게 대대적인 사고를 치고도 대충 눙치고 넘어가고 얼마 안돼 또 재발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자정'이라는 것이 사전에 없는 기관이라는 것을 너무도 대놓고 스스로 증명해왔다.

검찰이 스스로 벌인 인권침해, 강압수사, 부패 사례들에 진정 참회를 하고, 또 충실하게 자체 개혁에 나서 스스로 자제했더라면, 그런 노력을 언플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지속적으로 기울여왔다면,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전면 박탈하는 지금의 상황에 올 필요도 없었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김오수 검찰총장은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를 분리해 수사한 검사는 해당 사건의 공판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가, 휘하 검사들로부터 집단폭행, 난타 수준의 반발을 받았다.

김오수 총장의 당시 지침은 어차피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를 여전히 검찰이라는 한 기관이 수행하는데, 단지 그 역할을 동일 검사가 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검사들로 나누는 것에 불과한 매우 미약한 검찰개혁 조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검사들은 '검사동일체'의 정점인 총장까지 정면으로 치받으며 반발했던 것이다. 결국 휘하 검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하고 얻어맞기만 한 무능한 김 총장은, 스스로 공언한 수사-공판 검사 분리 조치를 철회해버렸다.

자정? 성찰?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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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검찰 수사권 분리는 철저하게 검찰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검찰이 파국이 예정된 길을 브레이크도 없이 질주해온 결과다. 민주당도 검찰개혁 시민들도 극단적 반발을 감수해가며 이 외통수 길로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비판을 해가며 검찰이 자체 개혁과 자정을 하거나, '온건한' 수준의 개혁 조치들로 검찰이 바로잡히기를 바래왔다. 하지만 검찰은 매번 그 모든 '온건한' 방법들을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검찰 자신이, 스스로의 운명을 외통수로 만든 것이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조국사태였다. 스스로 개혁이 안되는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을,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기소권을 극한까지 총동원해 탈탈 털어 온 가족과 일가를 멸족을 시키다시피 해버렸다.

나는 조국 수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표창장 혐의'에 대해 변호인측 포렌식을 맡아 실질적으로 무죄한 증거들을 밝혀낸 당사자이긴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의 유무가 아니다. 죄가 있든 없든, 검찰이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고 작심하고 털어대면 일족을 패가망신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것을, 검찰 스스로 무지막지한 실력행사로 보여준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누가 검찰개혁에 나서든, 그들 또한 조국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저잣거리 효수하듯이 말이다. 도대체 누가 대한민국 검찰에게 그런 흉포한 짓들을 벌일 권한을 줬단 말인가?

그래서 검찰 수사권 분리가 돌아설 수 없는 외통수 길이 된 것이다. 여러 다른 길이 있었음에도, 다른 길들은 검찰이 스스로 다 차단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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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수사력 문제로 범죄자가 활보하게 다니게 둬도 되냐고? 당연히 그걸 반길 사람은 법을 우습게 보는 상습 범죄자들 뿐이다. 하지만, 형사 절차의 효율성과 편의성을 위한답시고 인권이 침해되고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좌충우돌식 수사는 결단코 없어져야 한다.

백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잡아넣는 일은 없어야 하고, 범죄와 무관한 사람이 수사절차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하며, 또 범죄자라고 해도 죄 지은 이상의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근대 형사절차의 철칙이고, 검찰에 인권보호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라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다.

검사의 고유 권한인 영장청구권과 기소권만 잘 활용해도 수사기관들을 충분히 잘 통제할 수 있고, 그게 선진국형 형사시스템이다. 이미 형사소송법은 겹겹이 위법 수사의 결과물은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천년 이후로 위법수사를 남발한 것은 경찰보단 오히려 검찰이지 않았던가. 위법수사를 통제해야 할 검찰이 스스로 위법수사를 벌이면 그야말로 막장이 되는 것이고, 지금까지의 상황이 매우 그래왔다.

검찰은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생각 그만하고, 경찰의 수사권 남용이나 잘 통제하면 된다.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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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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