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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하는 이유는 검찰이 악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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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하는 이유는 검찰이 악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 딴지 USA
  • 승인 2022.04.29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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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길래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눈치보느라 하지 못했던 제 생각을 좀 적어볼까 합니다.

1.

수사와 형사소송절차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렇지만 형사소송법으로 대표되는 수사와 형사소송절차 법 체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뭔 소리인지 헷갈리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설명하겠습니다.

범죄를 밝혀내고 나쁜 놈들을 잡아넣는 것이 형사절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면, 범죄의 의심이 있으면 일단 용의자를 구치소에 가둬놓고 자백할 때까지 괴롭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필요하다면 몇 대 때려줄 수도 일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말이죠.

사람을 때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럼 사람은 내버려두고 주변을 모두 탈탈 터는 방법도 있습니다. 70번씩 압수수색하고, 여중생 일기장까지 다 탈탈 털어서 범죄혐의가 될만한 것은 모두 찾아내는 거죠. 수사와 형사소송 절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것이라면, 수사기관에게 이런 권한을 제한없이 인정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형사절차가 그런가요? 법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구속이나 압수수색을 위해서는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최근에 자주 언론에 자주 언급되었던 “별건 업수수색은 위법하다”라는 말도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범죄자를 때려잡는 것이 형사소송 절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면 별건 압수수색을 위법하게 보는 건 말이 안 됩니다. A 범죄로 압수수색을 했더니 B 범죄 사실이 드러났을 때 문제되는 것이 별건 압수수색인데, B 범죄도 저지른 것이 맞다면 그걸로 처벌하면 그만이지 무슨 범죄를 이유로 압수수색을 했는지를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에는 더 이상한 규정도 있습니다. 자백만으로는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누가 “내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백 이외에 별도의 증거가 더 있어야 유죄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자백의 보강증거 문제인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 형사절차의 1차적 목적이라면 말이 안 되는 원칙입니다.

그럼 도대체 형사절차 법체계의 1차적 목적은 무엇일까요?

형사절차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국가의 강력한 공권력에서 “피의자”와 “피고인”을 보호하는 겁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피해자”가 아닙니다. 피의자, 피고인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입니다. 공권력은 그 자체로 우월한 힘이지만, 그 공권력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이 국민을 수사하고 공소제기하여 형사처벌을 가하는 권력입니다. 이 권력은 비유적 의미만이 아니라 진정한 물리적 의미에서 폭력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형사절차는 그런 가장 강력한 권력을 국민에게 투사하는 절차입니다. 그래서 투사되는 권력의 상대방인 “피의자”와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까다로운 형사절차를 만들어 둔 겁니다. 정말 신중하게, 제한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누구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공권력의 비례원칙을 준수하면서 국가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형사절차법입니다.

물론 형사철차의 목적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형사절차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고, 그 진실에 따라 유·무죄 여부와 처벌 정도가 결정되니까요.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인 국가의 형사권력을 통제하는 것이고, 그 누구도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사절차에서는 “소극적 진실”, 즉 “죄가 없다는 사실”이 “적극적 진실”, 즉 “죄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형사절차의 가장 기본 원칙이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이 있어서는 아니된다”인 것이고,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가 “진실”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겁니다.

검찰이 검찰 개혁에 반발하면서 친검 법조인들이 다시금 일제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가장 자주 보이는 오류가 “피해자만 억울하다”, “범죄자만 좋은 일이다”라는 말입니다. 검찰도 그런 주장을 하더군요. 범죄 피해자 역시 보호받아야 하고, 범죄자는 붙잡아 정당한 처벌을 하는 게 맞습니다. 저도 그거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법조인들”들은 형사절차의 근본적인 구조를 디자인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호도하는 겁니다.

2.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견제와 균형”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사실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 그런 논란을 다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선택한 서구식 대의민주주주의 형식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선택한 민주주의 형태에서는 국민의 선거에 따라 선택된 권력 기관들이 헌법을 기반으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관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헌법은 권력을 여러 기관에 분산시키고, 그 기관들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요구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의 구현 방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기관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은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그 기관에 권력을 몰아주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될 테니까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유명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플라톤인데, 플라톤의 “철인 정치'가 그런 생각입니다. 진짜 똑똑하고 양심적인 “철인”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가장 좋은 정치가 구현될 거라는 생각이죠. 정말 그런 철인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런 방식이 가장 좋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그 어떤 기관도 “견제와 균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야말로 불멸의 진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도출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리합니다.

첫째, 민주주의에서 효율성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권력기관을 여러 개 만들고 그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짓입니다. 회의에 여러 사람들 들어와서 서로 눈치보면서 자기 주장 늘어놓고 상대방 견제하는 짓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다들 겪어보셨을 겁니다.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면 그런 상황은 만들면 안 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듭니다. 효율성보다 권력의 남용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지만, 민주주의에서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둘째,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특정 기관이 악마라서, 또는 특정 기관이 선하기 때문에 도입되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 개혁 논의에서 가장 쉽게 보이는 오류 중 하나가 이 부분입니다. 검찰개혁을 하는 이유는 검찰이 악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나쁜 검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검찰개혁의 초점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인적 청산이 아닙니다. 나쁜 국회의원이 있다고 해서 국회의 입법권을 뺏을 수는 없는 것처럼, 나쁜 검사가 있다는 이유로 검찰의 권한을 뺏을 수는 없습니다. 나쁜 검사가 있다는 사실이 검찰개혁의 명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검찰개혁의 명분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국가의 가장 강력한 권력인 형사권력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악마이기 때문에, 또는 경찰이 무능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을 혼내주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검찰개혁을 찬성하는 분들 중 이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시는 분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검찰 개혁은 검사들 개개인의 선함이나 악함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검찰이 악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셋째, “검수완박”은 틀렸습니다.

제가 요즘 이 말을 기회있을 때마다 하고 있는데, “검수완박”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검찰 개혁의 기본 원칙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에 따라 관련 기관들에 분배하는 것입니다. 그 분배 방법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견제와 균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3권 분립도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 등의 구현 형태가 있는 것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배 방식 역시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 행정부, 법원이라는 기본 구조를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한 것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배하는 것도 대체로 일치하는 국제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수사권을 경찰에, 기소권을 검찰에 주고, 이 두 기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기관을 두는 것입니다. 이 “별도의 기관”은 많은 국가들이 가입했고, 우리나라도 가입해있는 “부패방지협약”이라는 조약의 제6조에도 설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표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수사기소 분리”와 “공수처 설치”가 권력기관 개혁의 기본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이런 큰 틀 위에서, 수사권은 경찰이 기본적으로 주관하는 대신, 검찰과 공수처, 그리고 특별사법경찰 등이 견제하고, 경찰 또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등으로 분할하는 방식으로 견제구조를 만들고, 기소권은 검찰이 기본적으로 주관하는 대신, 경찰과 공수처, (재정신청 등을 통한) 법원의 불복 등 절차를 통해 견제하는 것으로 구초를 설계한 겁니다.

따라서 수사권의 경우, 1차적 수사권은 경찰에게 주는 대신, 검찰이 수사권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수사 도중”에는 강제수사 여부를 결정하는 영장청구의 방식으로, “수사 종료” 이후에는 보충수사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한편,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검찰이 이를 찾아내어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검찰이 이런 견제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검찰에게 보충적 수사 등에 대한 실질적 권한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검찰의 수사역랑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검사가 수사결과 등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수완박”은 틀린 말입니다. 수사권 조정 후에도 검찰은 여전히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수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3.

마지막으로 “한국형 FBI*라는 “중수청”에 대해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원래 문재인의 공약에는 중수청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검찰이 모든 수사를 주재했던 것처럼, 수사권 조정 이후에는 모든 수사를 경찰이 주재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6대 범죄 등을 구별하는 입법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6대 범죄”에 대해 예외를 두는 과도기적인 입법이 이루어지면서, 마치 “6대 범죄”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논의가 흘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중요 범죄는 별도의 수사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인지, 중수청이라는 기관이 등장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중수청 설치 주장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관이 많아지면 효율성 측면에서 불리해지는데, 효율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중수청을 별도로 설치할만한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입법 재량의 문제니 국회 등에서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다만 한 가지, “한국형 FBI”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가 있습니다.

미국의 FBI는 단순한 국가 경찰이 아닙니다. FBI가 미국 연방경찰인 것은 맞지만, 동시에 미국의 18개 정보기관 중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CIA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무려 18개의 정보기관을 만들고, 정보관련 업무를 이 기관들에 분산시켜 두었습니다 미국은 이 정보기관들을 통칭해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라고 부릅니다. FBI는 The U.S. Intelligence Community의 일원이며, 정보기관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https://www.dni.gov/index.php/what-we-do/members-of-the-ic

미국이 정보기관을 이렇게 여러 개 두고 있는 이유 역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 부분은 정보기관 개혁 문제와 연결되니 여기서는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FBI가 정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FBI를 모델로 하는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문제되고 있는, 그러나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우리나라 경찰의 국내정보 수집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정보기관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만, 원래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경찰의 치안정보와 범죄정보 수집 문제도 있었는데, 이 부분은 인지수사 등과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수사권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경찰에 대한 견제 문제에 있어서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데, 거의 논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새로 만드는 수사기관을 FBI를 모델로 한다면 진짜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다들 잘 알아서 하시겠지만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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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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