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군대는 안 바뀐다
상태바
군대는 안 바뀐다
  • 딴지 USA
  • 승인 2021.09.14 0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P.>라는 군대 드라마가 하도 화제가 되고 있다길래 지난 밤에 몰아서 봤다. 많은 예비역들이, 엄마들이, 애인들이 군대 폭력의 실상을 조금 들여다보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호소하기도 하고, 경악과 공포와 연민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시대 배경이 박근혜 정부 시절이란다. 그래서일까. 내가 겪었던 쌍팔년도 군대보다 딱 50배 약하다. 저 정도 가지고 뭘...

누구나 자기가 경험한 비극과 불행이 가장 크고 아프다. 군대 가기 전에 복학생 선배한테 물어봤다. 형, 군대 가면 어때요? 그때 막 시인으로 데뷔했던 4학년 복학생 형은 0.5초의 시차도 없이 대답했다. 외롭지, 뭐. 나는 기뻤다. 아, 군대에 가면 외롭구나. 나는 이제 진짜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겠구나. 진짜 시인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군대에 갔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딱 50배 더 외로웠다.

군대 가면 누구나 입에 물고 사는 말이 있다. 군대 X같네. 죽도록 후임들 괴롭히면서도 군대 X같네. 조낸 얻어맞으면서도 속으로 군대 X같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면서도 군대 X같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탄알이 장전된 소총의 방아쇠 근처까지 손이 가다가도 아, 군대는 원래 X같은 거지. 아, 군대 X같네, 군대 X같다... 제대할 때까지 천만 번쯤 염불을 하다보면 그냥 X이 돼버린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가해자면서 피해자가 되어서 정체가 분리되지 않는 공범자.

군대 이야기만 하면 댓글에 순 피해자만 보인다. 예비역들은 하나같이 다 피해자가 맞긴 하지. 하지만 군대의 그 무수하고도 비상식적인 폭력의 가해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들은 다 유령이었을까? 나한테 가슴을 얻어맞은 오산학교 후배 쫄따구와 멀대 같던 군종병에게 나는 얼마나 나쁜 인간일까? 나는 그들에게 용서라도 구하고서 군대를 벗어난 것일까?

3개월 전에 군대에 간 옛날 애인의 아들이 자대 배치 후 7명의 선임들에게 지속적으로 조리돌림을 당했다고(당하고 있다고) 한다. 사병끼리 "교육"시키고 지시하고 폭언하고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다 불법이고 가혹행위다. 부대 내에서 그걸 다 알면서도 그냥 별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그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야비하고 조직적으로 비겁하다.

나는 직접적 가해자보다 그것을 관망하고 방조하고 있는 자들에게 더 큰 분노를 느낀다. 군인은 죄를 지어서 갇혀 있는 죄수가 아니다. 말로만 신성한 국방의 의무, 자기들끼리 쉬쉬 인성을 짓밟으면서 거기에 무슨 신성을 끌어들이고 그러는가. 군대 폭력은 일제의 잔재다. 일본의 신사 귀신들에게서 얻어 온 조잡한 신성이 여전히 살아서 군대를 활보하고 있다. 친일매국노들이 벌인 짓이 지금까지 군대마저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D.P.>를 괜히 봤다. 몹시 불쾌하고 우울하다. 군대가 존재하는 한 저런 모순은 절대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군대 자체가 넌센스인데 그 본질이 극복될 리 없지. 야비함과 비열함과 찌질함과 비겁함이 처세의 기본이 되는 조직. 그러고보니 이건 그냥 사회의 축소판 아닌가. 그리고 나는 당장 옛날 애인의 아들이 당하는 부당한 폭력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지휘관들을 어떻게 혼내줘야 할지 궁리해야겠다. 아이디어 있는 분들의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기대한다. 시바.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출처가기

By 류근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0 /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