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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공소장을 읽어 본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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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공소장을 읽어 본 소감
  • 딴지 USA
  • 승인 2020.02.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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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미애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방침에 검찰과 모든 언론이 합심해서 대항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가 보란 듯이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는 호연지기를 보여주었다. 동아일보는 '적법하게 해당 공소장을 확보했다'고 주장하는데 법무부에서 비공개 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적법하게 확보했다는 것인지 괴이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71페이지나 되는 긴 분량이었지만 요즘 시간이 많은 나는 전문을 읽어 보았다.

읽고 난 소감은 크게 두 가지인데 이 공소장의 공개를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어떤 자신감?)이 궁금하다는 점과 추미애 장관은 비록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밝혔어도 이 공소장이 공개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고 여러가지 함정을 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낚시왕 추미애)

2.
장문의 공소장에 들어있는 핵심내용은 ‘청와대가 김기현 시장에 대한 하명수사를 황운하 울산경찰청장 등에게 지시하면서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김기현은 낙선하고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송철호가 당선되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말로 장황하게 그리고 (마치 내가 페북에 쓰는 개인 글처럼 감정까지 담아서) 썼다. 솔직히 좀 웃겼다.

3.
공소장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서문에 해당하는 1장은 선거에 있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한 것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왜 이런 내용을 썼는지 의도는 짐작이 간다. 해당 내용에도 동의한다. 단지 검찰은 지금까지 늘 정치에 관여해 왔고 이번 공소장도 정치적 목적을 잔뜩 담아서 작성했음에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에 대한 설명으로 공소장을 시작하니 빵 터졌을 뿐이다. 맞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썼는데 웃기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2장의 제목은 ‘송철호 선거캠프의 선거운동 전략수립’이라는 제목인데 내용은 울산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수 없고, 김기현 시장의 정치적 기반과 지지도가 탄탄하며 송철호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라는 내용을 설명했다.

공소장에 왜 이런 내용이 필요한지 당췌 모르겠다. 정경심 공소장에 조국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쓴 것을 보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었다. 또한 여의도 연구소나 여론조사 기관의 리포트에나 나올 법한 내용을 왜 검찰이 공소장에서 주장하는가?

4.
3장부터 8장까지는 송철호, 송병기, 문해주, 백원우, 박형철, 황운하 등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재미도 없는 내용을 읽느라 고생했는데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김기현을 근거없는 비리 정보로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뒤에 청와대에 하명수사를 지시해 달라고 요청했고 청와대는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그렇게 지시했고 실제 경찰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었으며 의도대로 지방선거에 영향을 주었고 송철호는 당선되고 김기현은 낙선했다”

이 내용을 주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누구를 만나서 어쩌구 저쩌구 했다는 내용들이다. 물론 이 내용들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들이고 재판과정에서 밝혀야 하는 내용들이다. (이게 검찰의 노림수인 것 같다. 사실관계를 장황하게 이것저것 제시해서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려는 의도 말이다)

공소장의 피고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황운하 청장의 페이스북을 보니 검찰 주장은 다툼의 여지가 매우 많아 보인다. (황운하 청장은 정면으로 검찰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5.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김기현에 대한 청와대 발 경찰 하명수사를 주장하기 위해 김기현의 비리 의혹들을 대단히 상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인데 도리어 그 내용들을 읽다보면 김기현 시장과 주변인물들의 토착비리 의혹이 거의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거 공소장 작성한 검사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김기현 비리 관련해서는 뉴스타파와 울산 MBC의 특종이 많았는데 해당 보도들을 이미 시청한 입장에서 이 공소장을 읽다보면 피고인이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공소장에는 의도적으로 ‘표적수사’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런 비리 의혹은 당연히 수사해야지”라는 소감이 먼저 들었으니 공소장을 쓴 검사가 ‘돌려서 멕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6.
그런데 이 공소장에서 가장 중대한 오류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담은 공소장의 여론조사 결과가 틀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2018년 2월 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김기현 40%, 송철호 19.3%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표적수사의 결과로 3월 16일 김기현 29.1%, 송철호 41.6%로 역전되었고,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도 최종적으로 송철호가 승리했다고 적혀 있는 부분이다.

7.
그런데 공소장 내용과는 달리 2018년 2월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의 실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항: 울산시장 선거 출마가 거론되는 인물 중 누가 울산시장이 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느냐?

결과: 김기현 37.2%, 송철호 21.6%, 심규명 5.8%, 임동호 5.1%, 이갑용 4.0%, 김창현 2.4%, 없다 6.3%, 무응답 17.6%

또 다른 문항: 김기현 울산시장의 연임에 대한 의견?

결과: 긍정 42.4%, 부정 48.3%

8.
검찰의 공소장에 적혀있는 숫자 ‘김기현 40% vs 송철호 19.3%’는 일단 사실관계가 틀리다.

또한 이 여론조사는 양자대결이 아닌 다자대결로 이 중에는 민주당 후보만 셋이다. 민주당은 아직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 셋을 합하면 32.5%로 37.2%인 김기현과 5% 이내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지난 2016년도 총선에서 여론조사에서 17.3% 뒤지는 것으로 나오던 정세균이 오세훈에게 역전한 일도 있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4.7%는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다.

게다가 다른 문항에 나왔듯이 그 당시에 이미 울산의 여론은 김기현 시장에 대한 연임보다는 교체에 대한 의지가 더 높았다.

9.
사실은 울산 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결과를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17개 광역단체에서 자유한국당이 승리한 지역은 대구, 경북 외에는 하나도 없다.

민심은 자유한국당에 도저히 투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완벽한 패배를 하고 이제 와서 하명수사 때문에 졌다고 우기는 것 자체가 정치공세에 불과한 것이다.

즉 검찰의 공소장에 나와 있는 내용은 숫자도 틀리고 내용도 의도적으로 가공을 했다는 사실이다. 숫자도 틀리고 내용도 다른 전제로 작성한 공소장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9.
그런데 왜 이런 공소장을 (검찰은 동아일보를 통해) 공개한 것일까?

여기서부터는 나도 추측인데

추미애가 ‘공소장 비공개’를 한다고 하니 검찰과 언론에서는 무언가 저쪽에서 찔리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서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일단 공개부터 한 것인데 정작 공소장을 찔러 준 검사 혹은 지시한 누군가는 그 내용을 제대로 검토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피의사실공표’를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검찰은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추미애 장관의 낚시다.

이렇게 긴 공소장은 대체로 언론에서 자신들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만 발췌해서 가공한 후에 기사화 하고 언론이 의도한 내용들만 사람들이 보게 되는데 지금처럼 '공개 vs 비공개'로 논란이 되는 바람에 전문이 통째로 공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검찰 공소 내용의 오류도 빼도박도 못하게 박제가 되어 버렸다.

10.
여기에 공판이 시작되고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미 공소장 전문을 본 이들 입장에서 어떤 내용을 바꾸려고 하는지 또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게다가 지금 상황은 쉽게 변경을 허가 받기도 어렵다.

최성식 변호사님 말씀에 의하면 공소사실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의 숫자가 사실과 다르다면 공소장 변경이 어렵다고 한다. 이 정도로 대중적 관심이 높은 사건일 경우 재판부에서도 허가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아, 그러면 동양대 표창장처럼 이중 기소를 하는 마법을 쓰면 되는 것일까?

11.
정리하면 논란이 되고 있는 공소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의 허점만을 들어냈을 뿐 그들이 무엇을 얻기 위해 공개했는지 그 의도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저 장황하기만 하고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공소장일 뿐이다.

내 페친들의 시간은 소중하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갖혀서 시간이 많은 내가 대신 읽고 소감을 올렸으니 참조 하시라.

또한 여전히 가짜 뉴스로 '공소장 논쟁'을 선거개입이라는 프레임으로 끌고 가는 시도가 많으니 이 글은 가능한 많이 공유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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