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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사회'를 지키는 척하는 '검찰독재 사회'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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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사회'를 지키는 척하는 '검찰독재 사회'의 카르텔
  • 딴지 USA
  • 승인 2021.05.0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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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민주사회...?

민주 시민들은 박정희 이후 노태우 정권이 지나기까지 군사 독재 정권이니 민주정권이 오면 억울한 이들의 한이 언젠가 풀리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억울한 이들의 한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7년 전 박근혜 정권의 무능이 불러온 세월호 참사가 민주 시민의 가슴에 불을 질러 촛불이 들려졌고, 우리는 보다 바른 정권이 들어서기를 노래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으니 밝음이 오면 될 것으로 생각했고,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노래했기 때문에 거짓이 물러나면 진실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겠는가?

정권이 바뀌고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기다림은 한 해 두 해 길어졌다. 정권이 세운 인사를 물리고 새로운 인사를 내보낼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윤석열을 문재인 정권의 검찰총장이라고 선언하는 대통령을 보고 정말 놀랐다. 그럼 윤석열에 의하여 만신창이가 된 조국,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왔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어느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었을까?

대한민국의 주요 권력 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출신의 인사들이 정부, 기업, 대학, 검찰, 사법, 정치 등 모든 영역을 막론하고 형 아우 하며 여야 없이 넘나드는 구조가 있는 것을 안다. 정치 영역에서는 유독 선거 때만 그들은 야당 여당의 본색을 드러낼 뿐, 일단 당선되면 화기애애하게 서로의 지위와 명분을 배려하며 건드리지 않는 이상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카르텔을 건드리는 이들은 그가 누구이건 일단 여와 야의 공동의 적으로 전락한다. 야권 인사들도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 정권의 부름을 받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 학연과 그 학연에 의해 이끌려지는 끈끈한 관계, 거기에서 형성된 내그룹(Ingroup)안에서는 명료하게 우열과 서열이 존재하고, 거친 자와 유약한 자 간의 복종과 충성의 관계가 암암리에 형성된다.

그들의 네트 웤은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지지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집단은 검찰이다. 다른 집단은 법을 무서워하지만, 이들은 법 집행 권력 그 자체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초법적이다. 이들은 서로 건드리지 않는 불문율을 자랑하며 초법적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건드리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지 멸문지화를 당한다. 내가 본 노무현과 조국이 그렇다. 두 눈 뜨고 노무현 대통령의 수치와 죽음을 목격한 민주당, 조국 가족이 겪었던 피비린내 나는 검찰의 칼바람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민주당 의원들은 아마도,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면서도 숨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검찰이 지목하여 타깃이 되는 순간 그의 정치 생명이 노무현이나 조국처럼 폐족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언론이 지배적 지위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언론은 검찰 권력에 쓸개까지 다 내놓고 부역하는 시녀의 특권을 누릴 뿐이다. 부역하는 한 그들도 유사 검찰기관의 대접을 받는다.

4년 임기 국회의원, 5년 임기의 대통령도 곳곳에 박혀있는 검찰 세력의 타켓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현실이 현저하다. 그들은 비록 지위가 낮아도 윤석열이 선언했던 것처럼 "부하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실질적 생살여탈권을 쥔 세력"으로 군림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청으로 나오는 날 청사 높은 층에서 낄낄거리며 "꼴 좋다"는 듯이 조롱하던 고위 검사들의 웃는 얼굴에서 나는 노무현의 검찰청 출두가 정의를 집행하려는 검찰의 공적이며 법적인 프로세스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노골적이고도 잔인무도한 권력을 가지고 바로 얼마 전까지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을 사냥하는 과정, 죽음으로 몰아넣는 과정이었다.

그들 세력은 정치적으로 불리해진 박근혜도, 이명박도 아주 쉽게 잡아넣었다. 미친 듯이 70군데 가까이 압수 수색을 벌이며 당시 현직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그의 친척, 아내, 딸과 아들을 범죄자로 몰아가던 윤석열 검찰과 검찰의 시녀인 각종 언론이 쏟아낸 마녀사냥의 열풍 역시 잔인한 검찰 권력의 현실적인 시위였다.

대한민국에서는 크거나 작은 권력을 가진 자는 검찰의 타깃이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동양대 최성해 총장의 앞뒤가 안 맞는 고백이 그 전형적인 패턴이다. 검찰이 위협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고,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깨끗하게 양심을 지키며 살아오지 않은 이라면 조국 전 장관이 당했던 시범 케이스 앞에서 도망할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무서운 권력 누가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말인가? 언론을 시녀로 삼은 검찰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조중동만을 읽으며 세상을 이해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언론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검찰의 정신적이며 정치적인 통제를 받는 존재들이다. 이는 마치 나치 권력이 언론을 모두 장악하고, 심지어 점성술과 동양철학까지 동원하여 나치 정권을 합리성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세력으로 묘사하며 언론을 동원하여 히틀러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동시에, 그가 아리안 민족의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떠들게 했던 정황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현실 파악에 우둔한 지식인이나, 현실을 잽싸게 파악한 지식인들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 히틀러 정권의 찬양자가 되었다. 한 편은 우둔하여, 한 편은 대세를 따라서.

히틀러는 가톨릭교회에 나가서 미사를 드렸고, 추기경들과 나란히 자리하기도 했으며, 하이데거와 같은 거물 철학자도 히틀러의 출중함에 경의를 표했다. 아리안 민족주의에 빠진 무수한 개신교 목사들은 히틀러를 하나님이 내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겼다. 한 편으로 히틀러를 두려워하며, 다른 한 편에서는 히틀러를 통해 우월감을 고취 받은 젊은이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히틀러 유겐트가 되고 싶어 했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던 권력에 대한 예찬은 바로 그 통제받지 못하는 속성 때문에 자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통령도 통제할 수 없는 검찰 권력, 그 권력의 하수인이 된 언론은 그때를 알 수 없지만 언제인가 스스로 몰락할 것이라고 본다. 히틀러의 몰락은 통제받지 못하는 권력의 오만으로 인하여 스스로 범한 반인륜적인 행위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권력의 몰락은 예언할 수 있지만, 그 권력에 의하여 비운의 억울함을 겪은 이들의 한이 풀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약속하거나 언급할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히틀러 정권을 형성하고, 방관하고, 지지했던 독일인,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동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논리는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하는 표어이지 그저 미래를 향한 확신이나 예언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억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전직 대통령으로 만들어 온갖 조롱을 받게 만든 검찰 ...", 그들의 청사에 출두한 노무현 대통령을 내려다보면서 낄낄거리던 검사들이 존재하는 한 이 나라 에서는 철학과 윤리적 가치가 짓밟혀 도무지 정의가 바로 설 수 없을 것이다.

촛불 정권이라 자칭한 문재인 정권에서도 이제는 괴물과 같은 검찰과 싸울 수 있는 장수가 더는 없는 것 같다. 괴물 권력 검찰과 비굴하게 공생하려 옅은 수를 쓰는 이들이 이 정권을 이끌어가는 것 같이 보이는 까닭이다.

검찰이 "논두렁에 버려진 시계..."를 허위로 꾸며대면, 모든 언론이 잽싸게 받아 나발을 불어 전직 대통령은 일순간에 억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조야한 인물이 되어 저잣거리에서 회화화 되었다. 조국 교수와 그의 아내와 딸까지, 검찰이 허위로 죄를 꾸며 던지기만 하면 검찰의 시녀들이 수만 건의 보도로 세상을 도배질한다. 허위를 믿고 노무현을 비난했던 세상, 그때와 마찬가지 그대로 조국과 그의 아내와 그의 딸을 비난한다.

누구의 자식은 연이어 죄를 지어도 끊임없이 방면되는 데 조국의 아내와 딸은 왜 말도 안 되는 표창장 위조라는 죄에 걸려 그의 아내가 법정 구속되는 일까지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검찰 편에 선 자와 서지 않은 자의 가족이라는 차이밖에 없다. 검찰 앞에서는 전직 대통령도, 현직 법무부 장관도 힘이 없고, 심지어 현직 대통령도 힘이 없다.

그러니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멍청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황 파악이 너무나 잘 되어 설설 기는 것이다.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권력이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했는데, 도대체 검찰이 가진 저 무소불위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라는 주장, 그것이 맞는 주장일까?

민주사회가 아니라 검찰 독재 사회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검찰의 이런 실상을 파악하고 검찰 개혁에 홀연히 앞장섰다가 모진 모욕과 곤경을 겪고 있는 조국 교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검찰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 소수 검사님들에게도...

 

 

 

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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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K Par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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