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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주모자(Remorseless Ringleader) '고든 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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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주모자(Remorseless Ringleader) '고든 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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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0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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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화요일 버지니아의 페어팩스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미국내 모든 매체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악명 높은 ‘고든 리디(Gordon Liddy)'다. ‘고든 리디’는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과 제휴한 공작원이다. 리디가 설계한 백만 달러짜리 기획안이 소위 ‘젬스톤 프로젝트(Gemstone Project)'다. 민주당 캠프를 도청하고 닉슨을 공격하는 신문 칼럼니스트를 암살하고 매춘부를 고용해서 민주당 관리들을 매수하고 민주당 당사를 절도하고..등등., 후에 알려진 리디의 젬스톤 프로젝트 내용이다. 1972년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는 민주당 캠프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이 들통이 나서 결국엔 닉슨이 백악관에서 아웃당한 그 사건의 총 주모자(설계와 집행)가 바로 ’고든 리디‘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리디를 가르켜 ’Super-Klutz(수퍼 얼간이)'라고, 뉴욕타임즈는 ‘Remorseless Ringleader(무자비한 주모자)’라고 제목을 달았다.

리디는 트럼프의 비선 정치 조직을 이끌고 있는 흑막의 계략꾼인 ‘로저 스톤(Roger Stone)'의 스승이다. 당시 10대의 ’로저 스톤‘은 리디의 지휘로 도청장치 설치를 위한 호텔잠입조의 일원이었다. 리디(닉슨)의 유산이 로저스톤(트럼프)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https://www.washingtonpost.com/.../cfd4359a-9234-11eb...

https://www.nytimes.com/.../30/us/g-gordon-liddy-dead.html

2.

리디는 뉴욕 부르클린에서 태어나서 뉴저지 호보콘에서 컸다. 어릴 적부터 그의 목표는 어떤 일에도 거침없는 가장 강인한 인간이 되는 거였다. 소년시절 그는 역기를 들고 뛰었고 자기 단련으로 불꽃을 손에 오래도록 쥐는 훈련을 했으며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 쥐를 잡아먹기도 했으며 감정이나 생각 없이 동물을 죽이는 훈련을 했다고 회고록에서 말했다. 1952년 뉴욕 브롱스에 있는 포담 대학을 졸업해서 아버지처럼 변호사가 되었다. 한국전쟁에 지원했지만 체력상태의 결손으로 전쟁터 경험을 이루지는 못했다. 1957년에 FBI요원이 되었다. 대도시 슬럼가의 현장요원, 워싱턴의 범죄 기록 감독관으로 활동했다. 뉴욕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 뉴욕의 닉슨 선거운동원이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백악관에 들어갔고 마약과 총기규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납치범들에 대항하기 위한 스카이 마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971년 존 미첼 법무부장관에게 소개되었고 곧바로 닉슨 국내정치담당 고문실로 배정되었다. 닉슨의 재선캠프를 담당하게 되었다.

3.

다른 워터게이트 피고인들과 달리 리디는 워커게이트 모의에 대해서 증언을 거부했고 끝까지 닉슨관련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입을 다문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유지했다. 그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끝까지 입을 다물었으면 닉슨은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수감자중 가장 긴 형기를 살았다. 20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52개월 복역했다. 감옥에서 나오는 대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텁수룩한 콧수염을 가진 작고 말쑥한 남자인 리디는 기자들에게 “ 제가 살아왔어야 했다고 믿었던 그대로 살았습니다. 나는 후회하지 않고 다시 그대로 행동 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오른팔 선거책사 ‘로저 스톤’은 리디의 이 말이 적힌 메모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한다. 출감 후 리디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그의 책과 스토리는 영화와 영상물로 만들어져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엔 리디가 영화에 손을 대기 시작 했으며 각종 영화의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공중파의 인기 토크쇼의 단골 게스트로 다녔으며 유명한 라디오 토크 진행자가 되었다. 1992년 시작된 ‘고든 리디 라디오 쇼’는 수백 개의 방송국이 연결했으며 나중에는 라디오 아메리카에 의해 위성연결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방송되었다. 2012년에 은퇴했다. 그는 70대에도 여전히 건강하고 날씬했다. 낙하산 점프를 하고 오토바이 여행을 하고 총을 모으고 피아노를 치고 그리고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그의 웹사이트는 전면은 미국 국기와 워싱턴 캐피톨 돔을 배경으로 한 그의 찌그러진 얼굴사진으로 되어 있다.

4.

사람들로부터 야생인으로 불려지는 ‘고든 리디’는 지난 화요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을지 모르지만 리디가 남긴 유산은 국가의 헌법을 파괴하면서 지금 이 나라에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무모함을 통해서 두려움을 감추는 작고 큰 ‘고든 리디’가 우리 정치를 괴롭히는 수많은 인물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2022년 중간 선거를 목표로 달려가는 트럼프 군단엔 수많은 ‘고든 리디’들이 그의 행적을 쫓아서 악랄하고 거침없고 용감하게 설치고 있다.

‘고든 리디’의 유산이 차고 넘친다.

로저 스톤, 스티브 배넌, 폴 매너포트, 마이클 코헨, 루돌프 줄리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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