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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임대차보호법,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관점
 회원_783018
 2020-08-04 13:21:07  |   조회: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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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30일에 계약 갱신 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그다음날인 7월 31일부터 즉각 시행에 돌입하였다.

2. 이번에 통과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핵심인 '계약 갱신 청구권'은 건물 임차에 있어 2년 간 1차 연장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고, '전월세 상한제'는 기존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상승폭을 최대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3. 새로 제정된 주책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직전 혹은 직후부터 이 법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혹자는 이 법이 기존의 주책 임대(차) 시장 질서 및 관행을 붕괴시킬 것이라 주장하고, 서울 강북에 집을 한 채 갖고 있고 강남에서 전세를 사는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을 '임차인'이라고 주장하며 마치 이 법이 임차인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처럼 사자후를 토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단체로 모여 '왜 내 집에서 세입자를 마음대로 못 내보내냐?'는 시위를 하는 사람들조차 등장했다.

4. 더욱이 무슨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모임인지 뭔지 하는 집단에서는 아예 이번에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니, 혹여라도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된다 한들 그들이 추구하고 지지하는 나라의 모습이란 게 오로지 가진 사람들의 이익과 권리 보존에만 몰두하는 나라일 듯 싶어 정신이 아득해지기까지 한다.

5.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극렬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의 핵심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경제적 권리'가 자리하고 있다. 쉽게 말해 개인의 재산권을 왜 사회가 규제하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사실상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도 안 된다. 국가 혹은 사회가 무엇이건대 개인의 돈을 세금이란 명목으로 뺏어가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런 주장이 온당한 것인가?

6.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내가 뼈빠지게 일해서 천신만고 끝에 장만한 집"을 왜 사회가 이래라저래라 하느냐고 한다.

그런데 이 주장도 틀렸다. 왜냐하면 그런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뼈빠지게 일해서' 집을 장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까말, 우리 사회에서 순전히 자기가 노동을 통해서 번 돈만으로 집을 장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있을까?

유주택자들 대부분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거나- 이 경우 은행의 돈은 누구 돈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광의의 의미에서 은행의 돈 역시 사회 공금이다- 세칭 갭투자를 했거나 혹은 부모에게서 다양한 편법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식으로 집을 장만한 사람들이 '뼈빠지게'란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들은 정말 '뼈빠지게' 일하는 노동의 고통과 눈물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7. 한편으로 지금 이 시국에 부동산 문제로 온 나라가 양분되어 내전에 가까운 분열과 갈등을 노출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지각있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현 정부를 향해서 더 이상 실기하지 말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건만 정부-여당이 미적거리다가 부동산이 겉잡을 수 없이 폭등하면서 사후약방문격으로 뒤늦게 팔을 걷어붙인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8. 그럼에도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과 입장을 밝힘으로써 몇몇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에 약간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갖고 이 글을 쓴다.

만일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이번에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경도된 현 정권이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박탈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9. 성경은 오로지 '영적' 문제만을 가르친다고 믿는 많은 보수적(근본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달리 사회 문제,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당연히 그런 이슈들에 대해 다각도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성경이 사회 문제에 발언하는 것의 상당수는 '부동산' 정의와 관련이 있다는 것 또한 특기할 만하다.

특별히 구약성경은 '땅'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공평하게 '배분 받아' 사는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

성경은 고아, 과부, 나그네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땅을 확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신신당부하며, 심지어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원래 소의 땅을 회복할 것을 사회적 구원과 윤리의 궁극적 목포로 제시한다(희년, 레위기 25:23 이하).

10. 부동산 정의에 관한 성경의 통렬한 가르침은 구약성경 예언서에 이르면 더욱 노골적인 양상을 띤다.

주지하듯이 구약의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불의와 부패에 맞서 신적 계시를 선포하면서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자기 시대의 이스라엘이 부동산 문제에 있어 극도로 타락했다고 비판하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언한다.

가령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께서 정의를 바라셨으나 압제뿐이었고,

의로운 삶을 바라셨으나 고통의 부르짖음뿐이었다.

오호라, 다른 사람들이 집과 밭을 차지할 수 없도록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더하여, 이 땅 가운데 홀로 살려 한 너희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이사야 5:7-8).

예언자 미가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들의 침상에서 악을 계획하고 동이 트면 그것을 실천하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손에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밭이 탐나면 밭을 빼앗고

집이 탐나면 집을 빼앗는다.

사람을 속여 그의 집을 빼앗고 그의 재산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야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했으니 너희는 이 재앙을 피하지 못하리라'"(미 2:2-3).

11. 통상 이사야와 미가를 가리켜 최초의 문서 예언자라 칭하는데, 우리는 이들 예언자들이 출현하던 시기에 이미 이스라엘 사회가 부동산 문제로 사회 양극화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구약 예언서(총 16개 예언서) 메시지의 핵심은 우상숭배를 질타하고 사회정의를 회복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부동산 양극화 문제를 한편으로 사회정의가 실종된 대표적 현상이자, 탐욕이란 우상숭배의 극단적 모습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은 실상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본질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다.

12. 신약성경에 이르면 구약의 땅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가르침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수렴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 때문에, 신약에서 부동산 문제를 직접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구절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최소한 두 가지 점에서 신약성경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동산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첫째는 사도행전 2-5장에 나타난 것처럼 오순절 직후에 성령이 충만해진 초기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힘썼다는 것이다. 즉 성령충만함의 공동체적 결과는 빈부격차의 완화 내지 해소를 위한 사회적 나눔에 있었다.

둘째는 초기 교회가 강력하게 견지했던 종말론적 삶의 모습이다. 예컨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어떠해야 할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지금부터는...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쁨에 넘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물건을 사는 사람은 자기가 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 그것은 이 세상의 현재 모습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7:29-31).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종말론적인 소망을 품고 있다면 이 세상의 위대한 가치(행복, 성공, 자랑, 안전에 대한 욕구)들을 과격하게 '상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13. 따라서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는 비교적 분명해진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사회에서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 불안에 대해 긍휼과 연민의 시선을 가져야 하며,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탐욕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물론 성경이 그리스도인이 집을 소유하거나 부자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소유와 재산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비춰 상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히브리서 11:16의 말씀을 약속으로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은 고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두셨습니다."

만약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그리고 교회 중에 이런 신앙 가치관과 신념이 분명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필경 우리 사회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엄청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회가 천민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오로지 개인의 탐욕과 특권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별하고 성찰하지 못한다면, 교회나 사회나 공히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출처: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3213497362077313&id=10000251242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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