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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그리고 분노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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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1 10:10:46  |   조회: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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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그리고 분노의 방향 - Keunhan Park, Associate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Utah

리더의 부재, 오늘날 미국의 비극

 

민중이 주도하는 사회의 변화는 분노가 그 시작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장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현대 한국 사회의 굵직굵직한 변화는 그 저변에 민중의 분노가 있었다. 4.19 의거부터 시작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29 선언을 이끌어낸 87년 6월 항쟁, 그리고 촛불시위로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까지. 민중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을 때 사회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격변을 시작한다.

민중의 분노가 사회 변화의 시작이라 해서 그 변화가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분노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을 때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많은 경우 시민들의 분노는 의분에서 비롯되지만 그 방향성과 분노의 강도는 날 것 그대로기에 바른 의제를 설정해서 분노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분노의 결을 다스리고 시민들의 분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면에서 촛불 혁명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적 변혁이었다. 특정한 리더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유기적으로 정치 집단을 압박하고 별다른 충돌이나 부작용 없이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지금 미국이 심각하다. 시민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결이 다층적이다. COVID-19으로 인한 경제침체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한 축으로, 그리고 George Floyd의 죽음으로 격발된 분노가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하면서 그 분노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솔트레이크시티만 해도 5월 30일 토요일 8시부터 6월 1일 월요일 아침까지 통금이 선포되었다. 미국에서 18년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통금이다.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에 대한 혐오 범죄나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피해 사건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류의 사건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 분노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George Floyd의 죽음이었다.

그런데 이 분노의 불길이 이상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으로 촉발된 시민 사회의 분노가 정작 그 문제의 핵심 -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인종차별과 혐오의 본질적인 문제에 다다르기도 전에, 약탈과 방화 그리고 looting이라 표현되는 상점 털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으로 그 방향을 급격히 틀고 있는 점은 충분히 당혹스럽다.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COVID-19으로 인해 억눌려있던 분노와 반응하면서 최악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노를 해결하고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할 의무가 있는 리더는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기만 한다.

리더의 부재. 오늘날 미국의 불행이자 비극이다. 그는 분노와 혐오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데 천재적이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전부인 듯 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시도한다. 그의 인종차별적 시각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혐오를 부추기는 무언의 시그널을 준다. 그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은 그동안 숨겨놨던 차별의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결국 현재 미국에서 불고 있는 광풍은 그의 작품인 셈이다. 어쩌면 사회를 변혁할 수도 있었을 정당한 분노는 리더의 협잡질로 인해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키고 있다. 미국의 시민의식이 높아 한국의 촛불시위같은 자발적, 비폭력적 시민저항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절망스럽다.

미국은 강대국일지는 모르지만 선진국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 시민들은 리더를 잘못 뽑은 혹독한 대가를 치루면서 이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미국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2020-06-01 10: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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