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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숙을 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회원_444857
 2019-12-06 03:27:31  |   조회: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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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숙을 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왔고 결혼도 했었답니다. 대구에서 아내와 함께 조그만 국밥집을 운영했습니다. 장사가 잘 안되었고 빚을 지다가 결국 갈라섰습니다. 둘 사이에 자녀가 없어서 그나마 홀가분했습니다.

남은 모든 것을 가지고 토스트 집을 열었습니다. 삼 년을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어느새 나이는 마흔 넷입니다. 가게 월세도 낼 수 없었고 보증금마저 날아갔습니다. 모든 것을 처분하니 백 몇십만 원이 남았습니다.

살던 곳을 떠나 서울로 가방 하나 들고 왔습니다.

십년만에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차마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친구도 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친구도 잘 가라는 말 한 마디 뿐.

아무리 생각해도 도와줄 가족도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없습니다.

돈이 백만 원도 남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방법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방은 지하철 물품보관소에 넣어 놓았습니다. 수중에는 몇 만원 뿐입니다.

피씨방에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 인천 민들레국수집이 그나마 노숙자를 잘 도와준다는 이야기가 제법 있습니다.

무작정 전철을 타고 동인천에 내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다는 동네를 세 시간이나 넘게 돌아다녔습니다. 거기가 거기 같고 여기가 저기 같습니다. 국수집을 찾지 못 했는데 밤이 되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라면 하나와 김밥 하나 먹으니 수중에 만 원이 남았습니다.

한 시간에 500원 하는 피씨방을 발견했습니다. 열 시간은 추위를 피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민들레국수집 지도를 다시 확인하고 확인했습니다.

뜬 눈으로 피씨방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다시 동인천역 광장으로 갔습니다. 차마 민들레국수집이 어디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마침 우편 배달하는 분이 계셔서 물어봤더니 천천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민들레국수집에 갔더니 몇 사람들이 밖에서 서성이고 있습니다. 열 시부터 밥을 먹을 수 있답니다.

꼴찌부터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 오신 분이네? 빨리 들어오라고 합니다.

앞 사람이 하는 것처럼 따라 밥과 반찬을 담았습니다. 밥을 먹어도 머릿속은 근심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이젠 뭘 하지...

밥을 먹고 국수집을 나서는 데 붙잡습니다. 민들레희망센터에 가면 샤워하고 빨래하고 독후감을 발표하면 3천 원을 준다고 합니다.

3천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센터까지 따라갔습니다. 빨래를 할 수 있었고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살 것 같습니다.

책을 한 권 골라서 독후감을 쓰려하니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대강 쓰면 된다고 합니다.

베로니카께서 물어봅니다. 언제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는지? 오늘 밤 잘 곳은 있는지? 춥지 않는지?

민들레국수집에 다시 가서 저녁을 먹고 봉사자 분과 함께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가면서 봉사자 분이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도 노숙을 했었는데 한 달전에 민들레국수집에 왔다가 찜질방에서 자고 국수집에서 먹고 그러면서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잠을 잘 수 있고 밥 먹을 수 있으니 ....

내가 노숙을 하게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출처: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426738291564670&id=100026855093063

 

2019-12-06 03:27:31
45.51.33.31

비회원_305808 2019-12-07 05:47:09
갑자기 들이닥치면 당황스러운데 민들레국수집 덕분에 삶을 조금이나마나 나아갈수 있겠네요 복받으세요 민들레국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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