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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성스러움, 종교라는 세속 '더 글로리'의 신학적 암시와 도전
 회원_686633
 2023-03-14 15:39:51  |   조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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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릭스의 화제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한 주변 평가 중에 공감된 짧은 한 마디는 "학폭은 현실인데 복수는 판타지"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권선징악으로 우리사회를 교훈하려 했으니 이런 구도가 한편으로 기꺼이 이해되기도 한다.

더 실감나는 한줄평은 이 드라마가 "(공의로운)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대결"이라는, 이 드라마 대본을 쓴 김은숙 작가도 크게 공감했다는 지적이다.

이 드라마의 대표적 악한으로 설정된 학폭 가해자들은 자신과 가족이 기성 종교의 추종자들이다. 박연진은 어미와 함께 샤머니즘에 의지하고, 이사라는 아버지가 목사로 기독교 집안이며, 박혜정은 불교와 친하다. 그런데 이들은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그 기성종교의 절대자 신이나 초월적인 영력을 개인이나 일가의 복을 구하고 악행으로 인한 화를 제거하거나 액운을 땜질함으로 기성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 신에 대한 순수한 헌신이나 신앙심은 없다. 철저하게 세속화한 종교의 초상이 이들 빌런의 외형적 종교행위를 통해 투사되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피해자 문동은은 제도권 종교의 신앙과 무관하고 복수하는 일에 신의 초월적 힘을 의지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주변의 선한 양심을 지닌 인간관계의 도움을 받아 의로운 신원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다. 억울하게 죽은 친구 윤소희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도 신이 아니라 문동은과 의사 연인 주여정이다. 이 타락한 세속의 그늘에 이렇게 교활한 지혜와 세속적인 우정/연정의 순수한 연대로 신을 말하지 않으면서 신의 공의로운 신원과 해원을 수행하는 인간들의 저항어린 몸짓이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는 암시다.

기성 종교가 많이 세속화되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기성 종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속 안으로 깊이 들어와 함께 동거하고 있었다.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인 추세와 맞물려 더 적나라하게 그 세속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다만 순진하거나 순진한 척하는 종교 안팎의 사람들이 그걸 눈치채지 못했거나 일부러 외면했을 뿐이다. 애당초 인간의 삶에 성과 속의 경계는 종교의 자기 보호와 확장을 위한 레토릭이거나 이 세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가난한 영혼들이 세속의 피안에 도피성으로 확보해둔 표상적 장치일 뿐이다.

오늘날 종교계도 대체로 능력주의가 지배한다. 명문대 출신, 최종 학력과 학벌, 기득권 가문, 짱짱한 스펙이 그 상부 구조를 지배하거나 그들과 함께 맨땅에 헤딩하는 심사로 눈물겹게 노력하여 자수성가하듯 거대한 종교체제를 건설한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에 의해 종교의 핵심부가 작동한다. 더구나 요즈음엔 그들끼리 정략 결혼이나 교차 세습까지 이루어지면서 계급의 경계가 더 강고해졌다.

소박한 교회에 직을 하나 얻으려 해도 운전면허, 피씨 기술, 음악적 재능, 무슨 자격증에 조직 관리 및 경영 능력이 검증되어야 수월하게 취업에 성공한다. 더 중요한 성패 요인은 물론 주변에 직간접의 강력한 추천 및 영향력으로 뒷배가 되어줄 만한 인맥이 있느냐 여부다. 기업이나 공직의 취업은 그나마 시험이란 객관적 관문이 있고 요즘 유행하는 '공정' 이념의 눈치라도 봐야 하지만, 종교계는 가장 중요한 결정적 변수가 수면 아래로 은폐되어 있어 외부에서 보면 감감한 오리무중의 현장일 뿐이다.

반면 우리의 세속사회는 공공의 불의에 대항해 촛불시위라도 하고 이태원참사 같은 국가적 재난에 공분으로 뭉친 일각의 선량한 시민단체에 의해 남들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주려는 사람들이 무관심한 다수의 틈새로 꾸준히 기동한다. 변호사, 의사라는 기득권 신분에서 낮은 자와 가난한 자, 억울한 자를 위해 돈벌이 안 되는 일에 뛰어들어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데, 이들이 꼭 종교적 보상심리를 깔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리 저변에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이 개판 현실일지라도 공의로운 심판이 이루어지는 게 신의 뜻이라는 막연할망정 희미한 신념이 그 교양의 일부로 내장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드라마는 종교라는 세속의 현장을 가로지르면서 세속의 신성한 틈새 진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써 기성종교의 음험한 내부 담합구조를 질타하는 도전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라도 종교 내부를 그 내부자들이 성찰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일반은총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듯, 21세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신적 계시가 성경과 자연, 역사뿐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드라마 이야기에서도 발원한다는 게 신기하다. 다만 그것을 애써 발견하여 보고 들을 만한 눈과 귀가 있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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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4 15: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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