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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국수 한 그릇 삶지는 못하더라도
 회원_630708
 2022-09-12 15:08:55  |   조회: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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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국수 한 그릇 삶지는 못하더라도

19년 전 태풍 매미가 경남 지방을 내습했을 때였다. 당시 동중국해에서 습기를 듬뿍 머금고 경남 고성에 상륙하여 포항 쪽으로 빠져나간 매미는 거의 사라호에 버금가는 위력을 뽐내며 남부지방을 초토화시켰다. 당시 수도권은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처참하게 붕괴된 부산항 대형 화물크레인의 사진으로 매미는 기억되고 있다. 특히 바로 1년 전 루사의 피해를 채 복구하기도 전에 매미가 들이닥친 터라 그 피해는 더욱 심했다.

당시 외가가 있던 경주시 내남면 역시 그 피해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다소간 저지대에 있었던 터라 형산강에 가까이 있었던 외갓댁 마을은 역시나 모조리 물에 잠겼다. 동네 주민들은 수해를 피해 줄을 지어 고지대로 향했고 태풍의 위력이 절정이 이르던 때가 되자 어느새 마을에서 제일 고지대에 있던 외가는 동네 사람들의 임시대피소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아직 정정하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수십년 간 쓰지 않아 오랫동안 광에 넣어두었던 큰 가마솥을 꺼내 물을 팔팔 끓이고 국수를 삶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을 하셨다고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국수는 허기를 빠르게 채우기가 매우 쉽고, 기본적으로 따뜻한 국물이 포함된 음식이라 비에 젖은 사람들이 온기를 되찾게끔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그렇게 태풍이 온 세상을 두들겨 부수는 와중에도 국수 삶는 온기는 동네를 빠져나가지 않았고 그 때 일을 도왔던 외삼촌과 어머니께서도 아직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신다.

이러한 일화에 당연히 따라붙는 설정이겠지만, 현재 밀레니얼 세대의 조부모님들은, 특히 2000년대 이후 시골 촌로로 남게 되신 분들의 사정은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 때 당시라고 인간적인 정이 지금보다 절대적으로 훨씬 더 흘러넘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옛 정이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간직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돌아가셔서 외할머니의 존재가 자리하시지는 않더라도 그 멈추지 않았던, 국수 삶는 가마솥의 김에서 피어오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매미가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것은 지난 2003년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탈출하고 월드컵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뒤 제법 다시 나라의 모양새를 갖추고 난 후라는 뜻이다. 그 때도 저런 일들이 있었다. 피난 온 동네 사람들에게 가마솥에 국수를 삶았다 하니 무슨 1955년 사라 때 이야기 같지만, 엄연히 2000년대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저런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세상에서 우리는 나 자신이 겪는 일이 아니라면 점점 더 타인의 문제에 대한 어떤 관심뿐만 아니라 온기에 찬 시선까지도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일부이겠지만 어떤 이는 미디어의 카메라 앞에서도 "이번 태풍도 별 것 아닌 듯 한데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라며 효율성을 운운하고, 또한 다른 일부이겠지만 어떤 이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정치적 반대편을 비난하는 것에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효율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이기는 하다. 성장이 갈수록 느려지고 있어 이제 윗돌 빼어 아랫돌 괼 일이 많아진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상 모두가 효율을 주장하고 그것이 공정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한 사회 공동체의 자원을 배분함에 있어서 어떤 '효율'의 라그랑주점은 정말로 계산하기가 어렵고, 또한 그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짜 공정하거나 평등한 무엇이라고 섣불리 주장하기도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내 호주머니에 무엇인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쉽게 비효율이 되고 불공정이 되고, 내 호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어 주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정치적 비난으로 지나치게 쉽게 논리가 전개된다. 하지만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이 세상의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19년 전에도 마을 주민들은 그저 살기 위해 높은 곳을 찾아 왔을 뿐 자리만 내주었으면 그만이지 국수까지 삶아 먹이는 것이 효율이고 공정이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우리가 수해의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줄 수 있느냐고 되물으실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하자는 말도 아니고 2022년의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외할머니가 국수를 퍼 담아 주시던 국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되어 재난과 관련된 각종 공적 지원과 피해 복구에 활용되어야 하고, 마을 주민들이 몸을 녹이던 외갓댁의 대청마루는 국가가 마련한 대피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발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길로 우리가 나아감에 있어서, 과연 내 일이 아니라고 비효율적이다, 불공정하다고 따지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를 대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1층 주민이 집에 물이 잠겼다고 해서 20층인 누군가에 집에 마음대로 살겠다고 들어가거나 그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없는 분절된 세상에 살고 있다. 때문에 결국 이들에게는 온기에 찬 시선들이 모여 여론을 조성해야 하고, 여기에서 국가의 역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혼란해지면서, 연대의 가치보다는 각자도생을 더 높이 사고, 그 어떤 측은지심도 없는 힘에 의한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을 멋진 것으로 생각하며, 심지어 이러한 변화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을 최근 꽤 자주 만나곤 한다. 세상의 흐름이 그러하다면 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고작 "내 일" 이 아니라고 해서 호들갑이니 효율성이니 공정이니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가마솥에 국수 한 그릇 삶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육수를 끓이는 그 훈김만큼의 온기도 우리는 잊어버릴 만큼 다들 힘들어져 버린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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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sung Brian Kim

 

 

2022-09-12 15: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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