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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우리 안에 날뛰는 무당들
 회원_119402
 2022-06-24 07:19:29  |   조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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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런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 기도는 능력이다 등과 같은 말들을 신앙의 전범처럼 떠든다. 기도가 뭔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기도 전에 기도가 전투적으로 강요되는 게 한국 개신교회의 모습이다. 삶의 절박함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간절한 외침으로써의 기도가 모든 기도의 전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보니 집단기도, 떼창 기도, 방언 기도 같은 것들이 교회를 지배하게 됐다.

이런 환경은 다른 기도의 유용성을 무력화시켜버리고 말았다. 조용히 자연을 관상하며 하나님과 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기도, 사람과의 대화 가운데 찬찬히 들어주고 깊이 품어주는 기도, 제 있는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는 기도, 길을 걸으며 묵상하는 기도, 좋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밀려오는 감동 가운데 하나님을 느끼는 기도, 세계와 사물의 내면으로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들어가 하나가 되는 기도 같은 것들을 기도의 영역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집단 기도, 떼창 기도, 방언 기도 같은 것들이 요구하는 것은 교인들의 결집력이다. 그것으로 기도하는 교인들을 결집시켜 교회의 조직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과정과 이로 인한 결과들을 교회의 부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를 신앙의 한 유형으로써가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도가 교회 부흥을 위한 하나의 종교 상품이 되었다. 기도는 가장 잘 팔리는 종교상품이다.

예전에 교단 목회를 할 때였다. 지방회 행사에 강사로 대전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초빙되었다. 그는 이미 ‘기도’라는 상품을 자신의 전매특허처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 터였다. 행사장 입구에 그가 저술한 기도에 관한 여러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책들을 훑어보면서 기함을 하고 말았다. 마치 학부생의 난삽한 짜깁기 레포트를 보는 것 같았다. 개념 설정도 어수룩한데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생각 없이 긁어다 편집한 것 같이 조악한 구성들을 보면서 이런 걸 돈 받고 파는 그가 용감하다 생각했다. 그는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다만 기도를 종교상품으로 특화시켜 판매하는 상술이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교회에 그 기도 상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강연을 한다. 내가 들었던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의 설교(강연)는 충격적이었다. 어쩜 저렇게 내용도 없고 앞뒤도 안 맞는 말을 횡설수설하며 용감하게 떠들 수 있을까? 역시 무식하면 용감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기도 상품에 감동과 위로를 얻고 영감을 얻는다고 하니 누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기도 상품의 또 다른 문제는 무속화의 경향이다.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합리적 사유보다 감각적 초월성에 경도된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하는 방언기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기도에 대한 무속적 이해 때문에 교회에 합리적 성찰이 사라지고 말았다. 부자 세습, 공금 유용, 성추문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데도 그 교회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미 그 교회가 무속화됐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사유와 성찰 없이 무속적 영감에 사로잡혀 종속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대형교회 목사들이 무속에 빠진 자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며 그를 한국의 요셉이라고 칭송한다. 외형만 다를 뿐 내적으로는 이미 같은 무속의 기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기도무당들이다.

기도에 대한 이런 의식은 하나님을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도하면 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박정희의 ‘하면 된다’를 종교적으로 각색한 상품이다. 그것은 매우 폭력적인 구호이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인간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윤리적인 경계선이 있다. ‘하면 된다’는 구호는 윤리적 경계선마저 허물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폭력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폭력적 정치 도그마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기도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의지와 힘만으로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게 신앙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소리 지르며 하나님께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기도)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교회에 박정희의 유령이 살아 춤추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세계와 존재의 심연을 고요히 들여다보며 그 가운데 흐르는 절대자의 숨결을 느끼는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 기도 훈련을 해야 한다. 잃어버린 기도를 찾는 일이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나는 시험하는 것이다. 떼창 기도를 하지 않아도,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을 뺑뺑이 돌리지 않아도 교회가 망하지 않고 건강하게 존립할 수 있는가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종교 이벤트에 교인들을 내몰지 않고도 내적으로 깊어지고 성숙해지며 인간과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인격적이고 지성적인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를. 그렇게 해도 교회가 망하지 않고 존립할 수 있는가를 나는 시험 중이다.

교회가 망해서 문 닫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무당이 날뛰는 게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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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4 07: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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