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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도 형사가 두둘겨 패는 대상이 당신이라면?
 회원_780900
 2022-05-24 09:42:02  |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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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이후로 실시간 예매율 3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대가 조국', 그 차트 가장 위에는 '범죄도시2'가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 예매율 46.1%, 역시나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 마블리 영화네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대작 '쥬라기월드: 도미니언'을 상당한 차이로 따돌리고 확실한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범죄도시' 시리즈를 상징하는 불멸의 대사는 "진실의 방으로!" 입니다. 발뺌하는 범죄자를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 패서 자백을 하게 만드는 마법의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참, 혹시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마동석 배우가 맡은 극중 형사의 이름은 기억하시나요? 방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분이 아니라면 이 영화들의 주인공을 그냥 마동석으로만 기억하시기 십상일텐데, 극중 주인공 형사의 이름은 "마석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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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마동석 배우가 극중 귀싸대기를 날리는 장면을 볼 때마다, 오래된 퀴퀴한 기억의 더미들을 비집고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의 체육 교사 백모씨입니다. (약간은 과장됐을지도 모르는) 지금 기억에 딱 마동석 배우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그는, 역시 마동석 배우만큼 육중해보이는 두꺼운 손바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모씨는 그 손바닥을 딱 마동석 배우처럼 활용해 학생들에게 귀싸대기를 날리곤 했습니다. 제가 그 백모씨에게 맞을 일은 많지는 않았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두 번인가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전 당시에도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었는데, 한번은 교탁 앞에서 한 대 맞고 교실의 앞문까지 날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백모씨는 뺨을 치는 손바닥에 자신의 체중을 실어 날리는 스킬이 있었거든요.

제가 백모씨에게 싸다귀를 맞았던 일은, 대단한 잘못도 아닌 별 시덥지 않은 이유였던 것 같은데 구체적인 사유는 기억이 안납니다. 맞고 날아간 순간 아주 잠깐 기절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특별히 세게 맞은 것도 아니고요.

그는 교사직과 별개로 부업으로 학교 근처에 헬스장을 운영하면서 학교 체육 선생을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혹은 주업이 헬스장이고 교사 직이 부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그를 백곰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40대 중후반 정도?) 머리가 좀 희끗희끗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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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관객에게 '범죄도시'의 최대 흥행요인은 마동석 배우의 '시원한 액션'만이 아닙니다. 관객이 그 액션(의 탈을 쓴 폭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감독이 배려해놓은 장치들이 더 큰 역할을 하죠. 감독은 맞는 역할의 배우에 대해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100% 범죄자로 단정할 만한 밑밥들을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깔아놓습니다. 그래서 과도한 폭력을 보는 관객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 혹은 문제의식 같은 것이 발동하지 않도록 한 거지요.

생각해보면, '범죄도시'는 제목에서부터 미리 '범죄'의 존재를 단정해놓았습니다. 게다가 누가 범죄자냐도 딱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선 별 고민 없이 이미 특정된 범죄자를 정의의 사도인 마동석 배우가 응징하는 모습을 팝콘 먹으면서 즐기면 그만입니다. 네, 영화로서 범죄도시의 스토리를 간단히 축약하자면, 이미 특정된 범죄에 대한 무지막지한 응징 폭력입니다. (범죄도시2는 혹시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영화가 아닌 실제 범죄 현장에서 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관객이 객관적으로 봐도 확실한' 범죄 정황들이 쫘악 깔린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당연히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현장의 형사가 '이놈 범인이야' 싶더라도 그 범인을 폭행하거나 멋대로 잡아족치는 것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는 각종 형사 관련 법률과 법규들, 매뉴얼들이 존재하는 거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철한 의식으로 경계하지 않는 한, 자신의 전문 분야나 생업이 아닌 한, 자신이 흘깃흘깃 들여다볼 뿐인 나머지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기를 원하지 않고, 또 복잡하게 보이면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들은 실체가 복잡하고 머리 아픈 사건에 대해선 다른 누군가가 '범죄자'라고 낙인을 찍어주길 기대하고, 일단 낙인 찍힌 사람을 더 깊은 고민 없이 간단히 비난하고 싶어합니다. 그 낙인 찍는 역할을 우리나라에선 주로 검찰과 언론들이 하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마동석 배우의 손에 이끌려 '진실의 방'으로 들어간 사람이 혹시라도 범죄자가 아니라면? 혹은, 약간의 범죄를 저지른 '잡범'이긴 한데 저렇게 인정사정 없이 처맞을 정도의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면? 제 고교 시절의 백곰 교사처럼 사소한 잘못에 무지막지하게 귀싸대기를 날려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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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법무장관 한동훈은 툭하면 "범죄자"를 입에 올립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그가 말하는 '범죄자'란 애초부터 운명처럼 범죄자로 태어난 사람으로서 어떤 경우든 범죄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유별한 종류의 인종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아래 취임식 발언을 들어보면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검찰의 일은 국민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고,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한동훈은 '국민'과 '범죄자'로 이분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에게 '범죄자'는 '평범한 국민'이나 '죄없는 국민'의 상대어가 아닌, 그냥 '국민'의 상대어입니다. 즉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한동훈에게 범죄자는 국민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만만한 공언이 과연 우리나라의 헌법에 부합합니까?

게다가, 이렇게 '국민'과 '범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한동훈의 취임사에서는 그 주체가 명시되진 않았지만 문맥상 누구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검사의 판단'입니다. 검사가 '이놈은 범죄자'라고 정의하는 순간 '국민'에서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범죄자 감별사'가 '검찰을 무서워하는 건 범죄자뿐'이라고 단언하는 것, 어째 무시무시해지지 않습니까?

법치국가에서 돌발 발언도 아니고 사전에 숙고해서 준비한 공식 발언에서 이런 말을 대놓고 내뱉는 사람은, 일개 검사도 일개 순경 자리에도 올라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떡하니 법무장관 자리에 앉았습니다. 엄정한 법무행정을 책임질 최고 책임자가 취임사에서부터 위헌적이고 무법적인 단언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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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도 형사와 한동훈 장관을 비교해보면 그들이 범죄자를 대하는 태도가 거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석도도 국민을 '국민'과 '범죄자'로 이분해서, '국민' 앞에서는 한없이 인자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범죄자' 앞에 서면 지극히 폭력적인 인물로 돌변합니다. 한동훈 역시 취임사에서 그런 인식을 대놓고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한동훈은 영화 속 마석도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입니다. 단지 그 지위가 일개 형사보다 비교도 되지 않게 높은 장관이라서만이 아니라, 그가 지난 수십년간 검사였고 이제는 검찰 전체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경찰의 송치 사건을 검토해 기소하거나 불기소하고 재판의 공소유지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사법제도상으로 경찰의 수사에 대한 간접적 견제장치가 됩니다. 하지만 비록 간접적이라곤 해도 경찰이 열심히 수사한 사건을 불기소로 허공에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강력한 견제장치입니다.

그런데 견제장치인 검찰이 직접 수사까지 하면 그 사건에 대해선 이런 견제 역할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소권에 재판 공소유지까지 하는 검사의 수사 행위를 견제할 다른 장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마치 축구 경기의 심판들이 한쪽 팀 선수들을 제끼고 직접 경기를 뛰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선수 겸 심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형사재판은 언제나 불공평했습니다. 형사재판은 재판정에서 피고측인 변호인과 원고측인 검사가 동등하도록 정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평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검사는 국가를 대리하는 변호사로서 피고인측 변호인과 동등합니다. (검사와 변호인 모두 attorney 또는 counsel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수사기관 역할까지 겸해왔다는 면에서 그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대항력이 형편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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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검사들은 근원적인 권한인 영장 신청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외에 변칙적으로 수사권까지 겸해서 갖고 있는 덕분에, 독자적인 '범죄자' 심증을 가질 '내적' 자격을 갖췄습니다. 물론 법적 자격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수사는 증거와 심증에 기반해 용의자를 압축해나가고 그 결과로 나온 종합적 결론으로 피의자를 특정하는 절차입니다. 그러다보니 수사결과에는 필연적으로 불합리하거나 완전하지 못한 심증도 뒤섞이기 십상입니다. 수사를 한 당사자는 자신의 결론에 존재하는 무수한 헛점들을 모르고 밀어붙일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이런 심증을 가진 사람이 직접 기소를 해도 될까요. 검찰이 수사권까지 가져야 한다면, 똑같은 원리로 경찰도 기소권, 영장신청권, 공소유지권을 가져도 됩니다. 이러면 검사들은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할텐데, 경찰에도 변호사를 많이 채용해서 검사로 운용하거나 혹은 아예 경찰관들의 호칭을 '검사'로 일괄 변경하면 어쩔 것입니까? 자잘하게 걸리적거리는 법률 조항들이야 개정한다 치고요.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제도가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사의 역할을 나눠놓은 것은, 수사기관의 불합리하거나 불충분한 심증이 직접 기소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일 겁니다. 그런데 한동훈 치하의 검찰은 국회가 법 개정으로 제한해놓은 기존 검찰의 수사권을 되찾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쓸 기세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을 '국민'과 '범죄자'로 나누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법무장관이란 자가 취임사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임기 내내 검찰 권력을 위헌적으로 운용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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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2는 전작에 이어 매우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재밌는 영화를 보시면서도, 영화감독이 관객의 편의를 위해 마련해놓은 교묘한 장치들을 걷어내고 나면, 이 나라의 누구라도 수사기관의 어이없는 심증에 낚여 귀싸대기를 맞거나 진실의 방으로 인도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수사하는 것이 일개 경찰이 아니라 검사라면 어떨 것인지, 일개 검사를 넘어 법무장관이라면 어떨지 한번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나아가서, 폭력성 가득한 범죄도시 영화를 보면서 난잡해진 정신을, 그 뒤를 이어 '그대가 조국'을 보면서 정리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검찰과 언론이 누군가를 범죄자로 정의해버리고 나면 개인과 그 가족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성찰해볼 수 있는 매우 잘 만들어진 다큐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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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화 범죄도시를 보고 혹시 그런 형사가 흔히 실존한다고 해도 우리는 큰 걱정 안해도 될 지도 모릅니다. '마석도 형사'가 엉뚱한 착각으로 죄없는 국민을 두들겨 팰 때 그걸 만류해줄 검사님들에게 호소해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을 두들겨 패는 것이 '마석도 검사'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신은 모든 게 탙탈 털려 패가망신하고 인생 전체가 지옥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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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09: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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