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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제도와 구조가 벗겨지고, 우리 모두가 교회를 개척해야 합니다
 회원_468931
 2022-05-10 11:08:40  |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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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1. 부목사의 현실에 대한 글을 썼다. 그랬더니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그중에 어떤 분은 나보고 비판만 있고, 대책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 대책이 없다. 우리는 망했다. 이 현실을 뒤집을만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인간 편에서는 없다.) 살아도 소수만 산다. 떠밀려온 수많은 무리는 또다시 떠밀려서 방출된다. 그리고 각자도생이다.

2.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떠올려봐라.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는 무너졌다. 무너진 성전에서 목 놓아 울어봤자 소용없다. 누가 역청과 아교로 잔해들을 엉성하게 붙어놓는다고 해도 다시 성전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너진 성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거다.

3. 어떤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그 시작은 그냥 사는 것이다. 어쩌면 바벨론 포로들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의 상황에도 거의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들에게 바벨론에서 회당을 짓거나 성전을 지으라고 하지 않으셨고, 그저 살라고 하셨다. 거기에서 집을 짓고 일을 하며 살라고 하셨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바벨론 제국의 평안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 우선 살 수 있어야 한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다잡아 무너진 성전 앞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4. 조금은 딴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제도와 구조로서의 교회를 잠시간 내려놓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제도로서의 교회가 갖는 장점이 있고, 그런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제도권 교회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운동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덩치 크고 늙은 제도권 교회의 행함은 강요나 폭력으로 다가오거나 이해할 수 없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사회 이슈에 보수적인 스텐스를 고집스럽게 취하며 세속을 대상으로 파워 게임을 즐기는 권력 집단(the establishment)으로 간주되며, 막무가내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덩치 큰 교회가 사회와 인류에 무슨 유익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대로 가다간 둘 중에 하나다. 제도 교회가 승리하고 승리해서 ‘크리슨덤’(christendom)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교회가 패배해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로 돌아가는 것은 문제이지만, 후자는 힘들지만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5. 왜 기회인가? 제도와 구조가 벗겨지고 그 민낯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야 거짓 보호막이 걷어지며 세상 속에서 진짜 교회로 살아갈 수 있을 기회가 생기고, 그래야 그 구조 안에서 거의 압살당하기 일보 직전인 하나님 나라 복음 운동이 약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로마 제국 안의 일곱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도로서의 교회는 잠시간 내려놓을 필요성이 있다.

6. 이에 따라 우리는 살아갈 능력만 구비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는 것 다음으로 운동으로서의 교회를 추구해야 한다. 무너진 성전으로 인해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일터로 내몰린 목회자들이 중심을 잡고 일하고 살며 가족들과 지인들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예배하고, 작더라도 가정 교회를 이루어 말씀과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서로를 치유하고 품고 회복시키는 데 힘쓰면서, 사회를 위해서 함께 헌신해야 한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그것에 응전하며, 이웃들에게 그 선한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파송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7. 그러므로 모두가 다 일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다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분당우리교회의 슈퍼 황제 개척만이 개척이 아니다. 그거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봤자 비닐하우스 안의 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충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며 성도들과 똑같이 교회를 섬기며 나눌 수 있는 광야에 핀 아름다운 들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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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0 11: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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