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언론, 시민들의 확성기 [딴지 USA]
코이노니아
사람은 땅의 저주다
 회원_615053
 2022-03-22 07:40:35  |   조회: 176
첨부파일 : -

예전에 한 지역 문화원에서 위탁받아 그 지역의 역사와 설화를 분석하고 고증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해발 7백여 미터의 산정에 사철 그치지 않고 샘물이 흐르는 동굴이 있었다. 그 높은 곳에 수맥이 터져 흐르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 동굴은 습하지 않고 온화한 기운이 있어 여러 대에 걸쳐 기도 도량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곳에 용(龍)과 관련된 특이한 설화가 있었다. 그 설화를 채록하고 분석하여 그것이 지역의 정신문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밝혀내는 일이 내가 설정한 테마였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더 이상 지쳐서 다시 오르지 못하겠다고 나자빠질 즈음에 그 산 아래 사는 마을 주민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 동굴 아래 어디 작은 봉우리에 천하 명당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 혈 자리에 장사지내면 발복(發福)하여 집안이 흥왕하고 재물이 넘쳐 자손만대가 잘 된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해가며 그 혈 자리를 찾기 위해 몇 번을 그 산에 다시 올랐다. 그런데 그 혈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혹여나 해서 사람을 바꾸어가며 몇 번을 다시 오르고 올라 기어이 그 자리를 찾고야 말았다.

그런데 나의 초보적인 풍수 식견으로 봐도 그 자리는 그리 탐탁한 자리가 아니었다.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홀린 거 같았다. 낙엽으로 덮여 있는 그 자리를 헤집어보니 흙밥이 여러 번 헤쳐져서 산만하기 그지없는 형국이었다. 동행했던 마을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고서야 그 연유를 알았다. 이 자리가 명당이라는 소문 때문에 먼저 있던 유골을 파내고 자기 조상의 유골을 암장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의 눈을 피해 야심한 밤에 유골을 지고 가파르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암장을 하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곳은 아파트처럼 유골이 층층이 쌓여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풍수(風水)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겨울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막아주는 뒷산(주산)과 생활용수가 흐르는 개울이나 강을 품은 터,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을 길지(吉地)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풍수란 애초에 종교적 관념으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현실적 필요에 의해 좋은 입지를 선택하는 인테리어 개념이었다. 풍수는 자연과 땅에 대한 인문주의 사상이었다. 땅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로써의 풍수는 그래서 마을이나 집터를 선정할 때 쓰는 양택(陽宅) 풍수가 출발점이다. 양택풍수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이었다.

그런데 풍수가 역(易)과 음양오행, 기(氣) 사상과 결합되면서 종교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특히 죽은 조상의 유해가 명당의 좋은 기운을 받아 살아있는 후손에게 전해진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 이론이 풍수의 뼈대가 되면서 양반사대부들은 명당을 찾기에 혈안이 됐다. 이 과정에서 풍수는 상업화됐다. 죽은 자의 집터, 즉 명당이 되는 무덤자리를 잡기 위한 음택(陰宅) 풍수가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세력 있는 자들은 명당을 선점하기 위해 권력과 재물을 사용하는 걸 넘어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희곤 감독의 영화 <명당>은 이러한 조선 사대부들의 땅에 대한 천박하고 야만적인 행태를 잘 보여준다.

풍수가 인문주의적 자연 이해를 버리고 미신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그를 통해 돈벌이하려는 잡술꾼들이 대거 등장했다. 일명 지관(地官)이라 하는 풍수쟁이들이 팔도를 휘젖고 다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땅을 그르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우매하고 미개하게 만드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미신에 빠져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자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때 그 피해는 국민 모두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땅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땅이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을 판결하는 장면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그 땅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그곳이 명당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도리를 따라 살 때, 평안과 즐거움이 젖과 꿀처럼 흐른다는 뜻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보지 못하고 땅을 탓하며 불법을 행하는 자, 그 땅이 토해낼 것이다. 이것이 인문주의 풍수가 사특한 잡술꾼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그리고 성경이 땅과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너희 전에 있던 그 땅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레위기 18: 27-28)

 

 

출처가기

2022-03-22 07:40:35
47.34.184.3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풍성한 믿음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