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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장군의 귀환과 예수의 재림
 회원_561999
 2021-09-01 06:49:56  |   조회: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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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이 70을 바라보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몇 번인가 울컥했다, 문재인. 그는 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에 봉안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가. 그것은 단순히 독립 유공자를 예우하기 위한 정성을 넘어선다.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된 것이다. 해방된 지 76년이나 지났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는 일제의 뿌리가 너무 깊게 남아 있다. 그 뿌리에서 날마다 독초가 자라고 있다.

그 악의 뿌리에서 자란 검찰과 언론과 친일 수구 세력이 민주사회의 가치를 훼손하고 유린하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가 바뀔 것이라 믿었던 시민들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다. 우리는 다만 대통령 한 사람 바꾼 것뿐이다. 그 외에는 바뀐 게 없다. 이 나라의 뿌리 깊은 곳에 아직도 일제의 마수가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 잔재들이 건국절을 1948년 8월 15일로 정하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세우려는 노력이 있었다. 보수정당과 보수 언론, 그리고 보수 기독교계가 나서서 적극 추진하려 했던 일이다. 이것은 자기들이 여전히 국가의 주인임을 내세워 권력을 지속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일제 식민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언론이라는 작자들은 일본의 수구언론과 썸을 타며 일본에 사대할 것을 우리 정부에 종용하고 있다.

친일 잔재들을 뿌리 뽑으려는 각고의 노력이 계속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너무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는 집권자 입장에서 이 문제는 일반 시민보다 얼마나 더 큰 무게로 다가올까. 그래서 장군을 귀환시키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에 봉안하려 하는 진짜 이유는 친일 잔존 세력을 향한 포고다.

봉안식 타이틀을 보라. ‘장군의 귀환’이다. ‘장군의 귀환’에 쏟은 의전을 보면 청와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기획인지 알 수 있다. 공군 전투기의 영접에서 보여준 비행에서 전투기 조종사의 영접 멘트는 가슴을 쿵하게 했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아르곤이 곤도르 왕국을 되찾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홍범도 장군의 관보(官保)에 쓴 ‘대한독립군총사령관 홍범도’, 이것은 친일 세력들을 향한 포고문이다.

대한민국정부는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독립군이 지금의 국가를 이룬 기틀임을 선포한 것이다.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을 등용한 이승만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흘려 싸운 독립군과 임시정부가 이 나라의 뿌리이며 기틀이라고 눈을 부라리고 선포한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고 침략자에 아부하여 부와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감히 주인행세하는 것에 대한 선전포고다. 까불지 마라, 우리나라의 뿌리와 기틀은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있다, 는 것이다.

만주에서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대적하던 자들, 박정희, 백선엽, 김창용 같은 자들을 건국의 기틀로 삼고 그들을 이념적 지향으로 하는, 국기 문란 세력을 향한 외침이다. ‘까불지 마라’ 대한민국의 시작과 그 뿌리는 항일 독립군이고 대한민국 국군의 초대 총사령관은 홍범도 장군이다, 는 것이다. 스물한 번의 예포를 쏘아 그를 국가 원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가 그것이다. ‘장군의 귀한’은 지금 여기서 판치고 있는 친일 잔존 세력에게 그 자리를 넘보지 말라는 선포다. 그런데 방송과 언론은 이 봉안식을 다루지 않았다. 이 거대한 국가적 행사를 두 개의 방송사만 낯 뜨거울 정도의 시간을 적선하듯 할애하는 데 그쳤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재해석하여 고통받는 지금 여기의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역사를 다루는 하나의 방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 유공자를 깍듯이 예우하고 그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얽혀있는 난국을 푸는 하나의 해법이다.

성경에도 이런 해법이 있다. 탄압받으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성경이 요한계시록이다. 계시록이 쓰인 시대는 로마의 황제 숭배가 종교 탄압의 수단으로 등장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폭력적으로 작동하던 때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의 폭력에 대응하는 어떤 신념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을 통해 하나님은 밧모섬에서 메시지를 주신다. 계시록은 수많은 그림언어들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진짜 왕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다. 이 우주 만물의 질서 가운데 주권을 갖고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가 진짜 왕이다. 그 왕이 곧 예수다. 황제를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 우리 왕이 너희 곁에 있다. 그리고 곧 너희에게 갈 것이니 참고 견뎌라.’

백선엽 장군, 박정희 장군, 김창용 장군이 우리의 장군이 아니라 홍범도 장군이 진짜 우리의 장군이라는 선포처럼, 이재용 같은 경제 권력자가 진짜 왕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가 진짜 왕이다.

장군의 귀환과 예수의 재림에 담긴 메시지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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