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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노니아
설교에 드러나는 설교자의 성품과 진의, 설교자의 숙명
 회원_218296
 2021-04-27 03:09:07  |   조회: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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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인 분과 정말 몇 해 만에 연락이 닿아서 전화 통화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대화 중 문득 생각이 나서 아직도 그 교회 설교는 잘 듣고 있냐고 물었다. 예전에 괜찮은 설교를 추천해 달라고해서 모 교회 목사님 설교가 괜찮다고 추천해드렸기 때문이다. 내 추천으로 유튜브에서 들어보니 괜찮다며 한동안 그분의 설교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 오래 못가서 몇개월 후엔 끊었다고 한다.

원론적인 멘트가 반복되는 것은 그나마 괜찮은데 설교마다 집중해서 자세히 들으니 뭔가 자꾸 불편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도 기본은 하는 설교라 생각해서 무엇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봤다는 것이다. 결론은 설교자의 진정성에 의심을 가졌다고 한다. 자기합리화가 심했고 무엇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보였다는 것이다. 대안이나 반성이 없는 비판도 결국 자기 의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미안해졌다. 멀리 계시는 분이라 그냥 온라인으로 들을만한 설교로는 괜찮다 싶어서 추천해 드렸다. 그 교회에 출석하거나 대면하여 만날 일도 거의 없을 거 같아서 그 설교자의 성품까지 고려해서 추천하지는 않았다. 그 목사의 설교가 그래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목회자로서의 자질이나 성품으로 본다면 부족하다고 여겼던 것은 사실이다. 교회를 부흥시켜 규모를 키우는데는 집중했지만 사람의 니즈를 파악하거나 성도나 부교역자들과의 소통은 잘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어차피 온라인 설교는 그냥 설교자의 성품의 진위까지는 잘 드러나지 않을 줄 생각했고 그나마 설교만 볼 때는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경솔함이었고 잘못이었다. 사실 아무리 스킬이 좋은 글쟁이라도 많은 글을 쓰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 생각이 드러나게 되어있다. 설교도 마찬가지다. 몇 편의 설교만 들으면 훌륭한 설교자라고 여겨지는 목사가 많다. 그런데 그 사람의 설교를 몇 개월 이상 자주 듣게 되면 제 아무리 고도의 스킬을 발휘해도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

글이든 설교든 자주 그리고 오래 듣게 되면 비록 그 설교자를 만나보거나 같이 지낸 경험이 없어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그 저자나 설교자가 어떤 사람인지 합리적으로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 오랜 만에 나와 통화한 지인은 불과 몇 개월의 설교를 듣고는 바로 그 설교자를 간파해 버린 것이다.

“오래 동안 들으니 메시지에서 그분이 보입디다. 자기 자신은 한국교회를 개혁할 소명으로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 개혁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꼰대였어요. 세상적인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과거 자기가 이룬 업적들, 성과들, 우수함에 기대어 설교를 합니다. 한두번이 아니라 반복 또 반복하면서요. 요즘 목회자들은 자기가 집사 시절에 냈던 열심보다도 못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깁니다. 그냥 한 마디로 자기 의에 사로잡혀 설교를 하는거 같아요. 목회는 어떠할지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뭐라 답해야 하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동안 침묵했다.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몇해 전 안목이긴 하지만 설교 추천도 신중하게 함부로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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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0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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